이 승 욱

곳곳의 부지런한 나무들이 풀들이

돌들이 집들이 길들이

제각각의 글자를 쓰고 있다

어느새 방대한

책이 되어버린 봄길

아마도 맹인들만이

무사히 이 봄을 건널 수 있으리

함부로 아름답다 그러지 말게!

온갖 사물들도 이제

공부하고 있으니

새 생명이 움트고 연두색 새싹들이 일어서는 모양을 자연이라는 종이에 제각각의 글씨로 글을 쓰고 있다고 표현한 발랄하고 재밌는 시다. 주마간산 격으로 아무 감동 없이 도래한 봄을 스쳐 지나치는 현대 문명인들을 향한 경계를 하면서 진지한 생명활동을 하는 봄을, 봄길을 봄책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