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4월 27일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은 한반도 평화에 대한 기대로 가슴을 부풀게 했다.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분단 후 처음으로 남쪽 땅을 밟았고, 문재인 대통령도 잠시나마 북한 땅을 밟고 되돌아 왔다. 남북 정상 간의 판문점 선언은 동북아의 굳어진 냉전구도의 지각변동을 예고한 거사였다. 북한 당국의 지난 18일 남북고위급 회담의 갑작스런 중단 선언은 남북관계뿐 아니라 싱가포르의 북미 정상회담 전망까지 어둡게 하고 있다. 판문점에서 싱가포르 회담까지의 길은 결코 순탄치 않은 것은 사실이다. 북미 협상을 앞둔 시점의 마지막 기 싸움일까. 3주 앞둔 북미 회담은 성공적으로 개최될 것인가.

현재로선 남북관계와 북미 관계 개선의 큰 틀은 흔들리지 않고 있다. 2차 대전 후 70여 년 지속된 냉전체제의 해체 과정의 진통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 보수 정당은 북한의 회담 제의를 성급하게 수용한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의 잘못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이번 북한의 고위급 회담 중단 선언과 풍계리의 남한기자 초청 거부는 북한의 협상 전술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북한 당국의 태도 돌변은 회담을 앞둔 시점의 북한 나름의 치밀한 계산 결과이지만 중국의 입장이 작용했다는 분석은 타당성이 약하다. 대체로 이번 한미 군사 합동 훈련이 북한 당국에 자극을 주어 그들의 태도 변화의 빌미를 줬다. 북한 당국은 외형적으로 한미합동 맥스 선더 훈련이나 태영호 공사의 발언을 문제 삼았지만 그것도 북한식 ‘작은 벼랑 끝 전술’이라고 볼 수 있다.

필자는 독일 통일 전후 독일을 몇 차례 다녀왔다. 독일의 통일은 같은 처지였던 우리가 벤치마킹할 모델이다. 서독은 인구와 영토 뿐 아니라 경제력에서도 동독을 압도했다. 6천500만명의 서독인구는 동독의 4배이고, 영토의 크기도 3배를 넘었다. 동서독 간에는 1970년 양독 기본 협정이 체결돼 인적 물적 교류가 활발히 이뤄졌다. 서독이 동독에 1년 간 지원한 경제 규모는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간 북한에 ‘퍼준 것’ 보다 훨씬 많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1990년 10월 3일 독일은 하나로 통일 됐다. 그들은 우리보다 내왕이 많고 기자도 교환하고 TV방송도 양독 간 상호 시청했다. 독일 통일은 서독 정부의 일관된 통일 정책과 활발한 교류 협력이 초래한 결과물이다. 우리의 155마일 군사분계선도 언제쯤 붕괴될까. 성경의 말씀처럼 그 때와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그것은 아직도 신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남북의 적대적 분단 구조는 정상 간의 선언만으로 청산되지 않는다. 판문점 남북 회담에서 싱가포르 북미 회담까지는 아직도 장애물이 도처에 널려 있다. 남북뿐 아니라 한반도 주변 4강의 안보와 국익 갈등은 가장 큰 장애물이다. 특히 G2국가로서 중국은 한반도의 평화 정착은 바라지만 미국의 한반도 진출을 더욱 우려하고 있다. 아직도 중국의 북한에 대한 인식이 과거 순망치한의 관계를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 역시 미국의 국익을 최우선하려고 한다. 일본과 러시아도 한반도 문제에 개입하려고 노력한다. 아직 지뢰밭으로 남아 있는 휴전선, 국내외의 분열된 여론, 정부의 일관성 없는 대북 정책은 또 다른 장애물이다. 이러한 여러 장애물이 남북관계 개선의 추동력을 떨어지게 한다.

싱가포르의 길은 멀고도 가깝다. 이러할 때일수록 정부는 싱가포르까지 안전운행을 도모해야 한다. 우리는 미·중이라는 큰 손님의 눈치를 보면서도 일본과 러시아 입장도 살펴야 한다. 우선 판문점 선언에 대한 국회 비준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정부는 한·미 군사 훈련의 당위성을 북한 당국에 설명하고 풍계리 현장에 우리 기자를 파견토록 해야 한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는 속도조절 운전을 해야 할 것이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