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오는 23~25일 진행키로 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를 취재기자들까지 불러들이는 국제적 이벤트로 기획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북한의 핵실험장 폐기를 놓고 또 다시 눈꼴사나운 남남갈등이 빚어지고 있어서 국민들을 우울하게 하고 있다. 핵실험장 폐기가 한반도 비핵화에 의미있는 진전인 것은 맞지만 지나치게 가치를 부풀려 미화하는 것도, 무조건 ‘의미 없는 쇼’라고 평가절하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북한 외무성은 지난 12일 발표한 공보에서 “핵실험장을 폐기하는 의식을 5월 23일부터 25일 사이에 일기 조건을 고려하면서 진행한다”고 공표했다. 북 외무성은 “핵실험장 폐기는 핵실험장의 모든 갱도를 폭발 방법으로 붕락시키고 입구들을 완전히 폐쇄한다”면서 “기자단을 중국 러시아 미국 영국 남조선으로 한정한다”고 밝혔다.

여야는 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발표와 관련,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민주당 백혜련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에서 “완전한 비핵화를 실천하는 첫 조치인 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결정을 환영한다”며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신뢰를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페이스북에서 “북한은 2008년 이미 냉각탑 폭파 쇼를 한번 해 세계를 기망한 적이 있다”며 “문제는 기존 핵 폐기”라고 지적했다. 바른미래당 김철근 대변인은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가 북핵폐기의 시발점이 되길 기대한다”면서도, 2008년 영변 냉각탑 폭파 이후 북핵이 완성단계에 이른 점을 거론하며 냉정하고 침착한 관리를 주문했다.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은 “(북한이)여러 나라의 언론인을 초청한 것은 핵실험장 폐기를 국제사회에 투명하게 공개한다는 의미도 있다”며 “풍계리 갱도를 폭파하는 다이너마이트 소리가 핵 없는 한반도를 위한 여정의 축포가 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또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최소한 미래핵을 개발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진정한 ‘한반도의 평화’를 구축하는 길은 멀고도 험난하다. 이제 겨우 이정표 하나를 만들어 놓고 길을 보고 있는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시점에 이미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북한이 용도를 다 한 핵실험장을 폐기하는 이벤트에 감동하여 뭔가 다 성취된 양 의미를 침소봉대하며 온 국민의 방심을 키우는 것은 지혜로운 태도가 아니다. 지금이야말로 차분하게 사태를 적확(的確)하게 평가하고 합리적인 의심을 동원해 오판을 예방해야 할 때다. 더욱이 보수-진보가 이 문제를 놓고 단세포적인 대결양상을 나타내는 것은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평가할 건 적절하게 평가하되 경계 또한 늦춰서는 안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