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가 국립지진방재연구원 유치를 본격화하면서 연전 동남권 공항 건설논란으로 빚어졌던 영남권의 극심한 지역갈등이 우려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내놓은 ‘동남권 지진방재센터 설립’ 공약을 아전인수로 해석해 발 벗고 나선 부산시의 행태는 최근 지진재난을 당해 고통 받고 있는 경주와 포항 등 경북지역민의 처지를 외면한 처사다. 센터 건립을 염원하는 이웃 재해민들을 배려하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부산시는 11일 부산시청에서 경남 양산시, 부산지역 국립대 연합(부산대, 부경대, 한국해양대)과 지진전문 연구기관인 국립지진방재연구원의 설립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부산 주변은 원전밀집도가 높고, 양산단층·동래단층·일광단층 등 지형특성을 내세우고 있다. 부산시는 이미 지난해 11월 전담팀(T/F)을 발족, 부산발전연구원과 함께 연구를 벌인 결과 부산대 양산캠퍼스 산학협력단지(10만㎡)가 최적지로 꼽혔다고 주장했다.

울산시도 경제성과 실효성을 들어 울산 혁신도시에 위치한 국립재난연구원 지진대책연구실을 확대해 연구원을 설립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재해가능성이나 위험성을 전제한 부산시나 울산시의 지진방재연구원 유치 당위성 주장은 지난 2016년 ‘9·12 경주지진’, 2017년 ‘11·15 포항지진’을 각각 겪으며 지진재난을 실제로 경험한 경북에 비하면 지극히 비현실적인 핑계다. 포항시와 경주시는 연구원 유치만큼은 결코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번 부산시의 유치전 개시를 놓고 정치적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한 지자체간 갈등으로 수년간 제자리걸음 중인 ‘원해연(원전해체기술연구센터) 유치전’의 재판(再版)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깊다.

지진방재연구원은 지난해 5월 대선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사항으로 제시된 정도에 불과하고, 아직 구체적인 설립일정 및 방안이 확정된 것은 없다. 걱정스러운 것은 지진이 발생한 지역의 생생한 현장에 연구원을 건립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는 상식을 무시하고 또 다른 저급한 정치논리가 개입돼 유치결정이 좌지우지되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국책사업이 지금까지 해온 방식대로 정략적 대응과 부실한 이슈관리로 갈등을 부채질하고 지역감정을 덧내는 상황으로 치닫게 해서는 안 된다. 부산지역에 원전이 많다거나, 지형이 특수하다는 논리 따위는 모두다 부질없는 견강부회(牽强附會)에 불과하다. 담백하게, 그리고 신속하게 접근하는 것이 맞다. 뜻하지 않은 강진으로 혼비백산했던 경주와 포항의 비극을 생각한다면 해답은 그리 복잡할 이유가 없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또 다시 정략놀음으로 지역이기주의를 부추기는 행위는 국익을 좀먹고 국민화합을 해치는 망국적 행태에 지나지 않음을 각성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