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영 주

봄이 가려운가 보다

엉킨 산수유들이

몸을 연신 하늘에 문대고 있다

노란 꽃망울이 툭툭 터져 물처럼 번진다

번져서 따스히 적셔지는 하늘일 수 있다면

심지만 닿아도 그을음 없이 타오르는

불꽃일 수 있다면

나는 너무 쉽게 꽃나무 곁을 지나왔다

시간이 꽃보다 늘 빨랐다

오랫동안 한 곳을 보지 않으면

그리고 그 한 곳을 깊이 내려가지 않으면

시가 꽃이 되지 못한다

가슴 안쪽에 생기는 나무가 더 많이

그 그늘이 더 깊어

고향 묵호를 떠나 빛고을 광주에서 생활해온 시인은 1980년 5월의 빼앗긴 봄을 본 것이다. 5월에 피어오르는 꽃의 불꽃은 순수한 생명의 욕구와 상승의 의지로 타오르며 인간을 환희에 젖게 하지만 시인이 본 것은 잔혹하게 피에 젖은 오월이었다. 암담한 그늘 속에 피는 오월의 꽃을 본 것이다. 해마다 오월이면 우리들 가슴 속에 피어오르는 짓붉은 상처의 아픈 꽃이 있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