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의호<br /><br />포스텍 명예교수·DGIST 총장특보
▲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DGIST 총장특보

한 과학자의 빈소에 과학을 좋아하고 과학을 하고 싶어 하는 중고생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그들의 얼굴은 명복을 비는 마음과 함께 위대한 과학자의 길을 함께 걷겠다는 미래의 희망으로 가득차 있는 듯 했다.

지난주 과학계의 큰 별 하나가 졌다.

20세기를 대표하는 과학자 또는 물리학자를 꼽으라면 단연 아인슈타인이 선택될 것이다. 그런데 그 다음으로 유명한 사람을 꼽으라면 누굴 꼽을 수 있을까?

많은 과학자들은 영국 캠브리지 대학의 스티븐 호킹을 꼽는데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 그에게는 “천재적인 물리학자”라는 수식어가 늘 붙어다닌다. 그런데 그는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말조차 할 수 없는 핸디캡이 있는 과학자이다. 그는 과학자들에게 상대성 이론과 우주론에 대한 독창적인 업적으로 유명하지만, 일반인들에게는 루게릭병으로 뒤틀어진 외모로 더 유명하다.

그는 옥스퍼드 대학 재학 시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고,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다. 그렇지만 그는 병과 투쟁을 해서 병마를 이겨 냈고, 읽고, 말하고, 쓰는 것이 다 어려운 상태에서 이론 물리학의 중요한 업적들을 출판했다. 그의 대중적인 책 `시간의 역사`는 전 세계적으로 1천만 부 이상이 팔린 베스트셀러이다.

호킹은 이론 물리학 분야의 아이콘(icon)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20대 초반 학생 시절인 1964년 공개강연에서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저명한 천체물리학자인 프레드 호일의 이론에 도전하면서 블랙홀에 적용되던 특이점을 우주 전체에 적용해서, 우주가 팽창하고 일반 상대성 이론이 참이라면 이 우주 전체가 하나의 특이점에서 탄생해야 한다는 이론을 수학적으로 증명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기도 했지만 이는 호킹의 이런 연구의 기반이 되었고, 그의 빅뱅 이론과 블랙홀 이론의 출발점이 되었다.

호킹은 1975년에 케임브리지 대학의 교수가 되었고, 1979년에 명예로운 루카스(Lucas)좌 석좌교수가 되었다. 이 자리는 뉴턴을 비롯해서 쟁쟁한 수학자, 물리학자들이 거쳐 간 자리였다.

호킹은 계속 저술을 출판했고, 전 세계를 돌면서 강연을 했다.

그의 한 마디 한 마디는 미디어의 주목을 받고 있는데, 그는 2008년에는 “우주의 광활함을 고려했을 때, 우주 어딘가에 원시적인 형태의 외계인이 살고 있을 가능성이 충분하며, 지적 생명체의 존재 또한 가능하다”고 했으며, 2015년에는 인간보다 똑똑한 인공지능의 개발은 인류의 멸망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디지스트, 포스텍을 비롯한 국내 5개의 과학기술 특성화 대학에는 그의 떠남을 애도하는 빈소가 설치되기를 소망하면서, 필자는 필자가 현재 근무하는 디지스트의 호킹 빈소를 찾았다.

빈소는 캠브리지 유학시절 호킹 박사를 따르고 그와 절친하게 지냈던 디지스트의 교수가 직접 설치하여 학생들이 잘 드나들 수 있는 길목에 세워졌다.

교수, 학생들이 찾기도 했지만 중고교생들의 방문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교장 선생님의 인솔로 빈소를 찾은 과학을 열망하는 인근 중고교의 학생들의 얼굴엔 슬픔보다는 그의 학문적 열정을 따르겠다는 각오가 보이는 듯 했다.

그들이 호킹 박사의 일대기를 듣고 동영상을 보고 있는 모습은 여느 청소년들과는 다른 진지한 모습이었다.

그 어떤 노벨상 수상자보다 위대한 업적을 남겼지만, 호킹 박사 이론은 직접 실험적인 검증이 불가능한 것들이 많아서 노벨상을 받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의 빈소를 찾은 한국의 청소년들의 얼굴에서 미래의 노벨상도 그리고 호킹 박사 같은 위대한 업적이 나올 것이라는 생각에 필자의 마음은 들뜨고 있었다.

그들의 희망찬 마음을 아는지 봄을 알리는 캠퍼스의 목련이 꽃망울을 가득 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