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호<br /><br />서울취재본부장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지난 14일 오전 서울 중앙지방검찰청 포토라인 앞에 선 이명박 전 대통령은 착잡한 표정으로 준비한 대국민메시지를 읽어내려갔다. “저는 오늘 참담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무엇보다도 민생경제가 어렵고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환경이 매우 엄중할 때 저와 관련된 일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어떤 이유가 됐든 전직 대통령으로서 국민들의 마음을 어지럽힌 점에 대해 사과의 말을 전한 것이다. 이 전 대통령은 이어 “전직 대통령으로서 물론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습니다마는 말을 아껴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하고 있다”라고 호흡을 조절한 뒤 “다만 바라건대 역사에서 이번 일로 마지막이 됐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더이상 우리 역사에 이른바 `부메랑 효과`가 없었으면 한다는 선언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이었고, 그의 측근들 역시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했던 참모들이 즐비하다는 걸 생각하면 이 전 대통령의 원죄(?)는 그의 재임시절 표적수사 논란 속에서 이뤄진 `박연차 게이트`에 대한 수사에서 비롯됐을 수 있다. 이 사건에 대한 수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라는 역사의 비극을 낳았다. 이 비극적인 수사가 현재까지 이르는 극심한 갈등의 불씨로 작용했고, 결국 이 전 대통령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왔다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실제로 이 전 대통령은 지난 1월 서울 삼성동 사무실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을 향한 검찰 수사가 “보수 궤멸을 겨냥한 정치공작이자 정치 보복”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 역시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이명박(MB) 전 대통령의 검찰 소환 조사에 대해 `6·13 지방선거를 위한 문재인 정부의 정치보복`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홍 대표는 “모든 것을 지방정부 장악을 위한 6·13 지방선거용으로 국정을 몰아가고 있는 문재인 정권을 보고 있으면 이 나라의 미래가 참으로 걱정된다”면서 “남북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 개헌, 집요한 정치보복 등 모든 정치 현안을 6·13 지방선거용으로, 정략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홍 대표는 “죄를 지었으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처벌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지적한 뒤 “그러나 복수의 일념으로 전 전(前前) 대통령의 오래된 개인비리 혐의를 집요하게 들춰내 꼭 포토라인에 세워야만 했을까. MB처럼 (이 정권에도) 부메랑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사실 전직 대통령의 비리로 채워진 TV뉴스를 보노라면 “인간의 욕망이란 끝이 없구나”하는 탄식이 절로 흘러나온다. 당시엔 전혀 알 수 없었던 수많은 비리와 흑막들이 어느 날 부턴가 정치권 뉴스 전면을 장식하며 국민들의 눈과 귀를 어지럽히는 것 역시 `데자뷰`처럼 느껴져 마뜩치 않은 게 사실이다. 이리저리 어지러운 마음 잡지 못한 채 책을 뒤적이다 우연히 읽게 된 한 구절의 기도문이 내 마음에 위안으로 다가온다. 작자 미상의 `수우족 인디언의 구전 기도문`이다.

“바람 속에 위대한 당신의 목소리를 듣습니다./당신의 숨결이 세상 만물에게 생명을 줍니다./나는 당신의 많은 자식들 가운데/작고 힘없는 아이입니다./내게 당신의 힘과 지혜를 주소서./나로 하여금/ 아름다움 안에서 걷게 하시고/내 두 눈이 오래도록/석양을 바라 볼 수 있게 하소서./당신이 만든 피조물들을/ 내 손이 존중하게 하시고,/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내 귀를 예민하게 하소서./당신이 내 부족 사람들에게 / 가르쳐준 것을 /나 또한 알게 하시고, /당신이 모든 나뭇잎/모든 돌 틈에 감춰둔 교훈들을 /나 또한 배우게 하소서./내 형제들 보다 /더 위대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장 큰 적인 내 자신과 싸울 수 있도록 /내게 힘을 주소서. /나로 하여금 깨끗한 손, 똑바른 눈으로 /언제라도 당신에게 갈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소서./그래서 저 노을이 지듯이 /내 목숨이 사라질 때 /내 영혼이 부끄럼 없이 /당신에게 갈 수 있게 하소서.”

검찰청 포토라인에 섰던 5명의 전직 대통령 모두에게 전하고 싶은 기도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