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혜명 선린대 교수·국제경영학과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더니, 그리도 길고 추웠던 겨울의 기억을 씻어 내리기나 하는 듯 봄이 도착했다. 입춘, 우수, 경칩을 어느 틈에 보내고 봄은 벌써 춘분을 기다리고 있다. 겨울의 끝자락에 선물처럼 다가왔던 평창올림픽은 겨레의 가능성을 또 한번 시험하려는 것일까, `평화`라는 소망어린 화두를 던져줬다. 그래서 2018년의 봄은 얼어붙었던 대지를 녹일 뿐만 아니라, 우리네 보통 사람의 마음도 설레게 하는 마법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기회로 삼아 기대처럼 평화로 나아갈 것인지 아니면 수없이 그래 왔듯 또 다시 분단의 그림자 앞에 주저앉을 것인지. 하여, 봄을 맞는 설렘은 기대가 절반 걱정도 절반인 모습으로 두근두근하는 것이다.

그것 뿐이랴. 지난날의 부끄러움을 재단하는 법정들이 기다리고 있으며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기 위한 개헌논의도 길목을 지키고 있다. 이 모든 의미심장한 과제들과 함께 지역을 이끌어 갈 도량을 가려 뽑기 위한 선거도 그리 멀지 않았다. 인류의 절반이 신음하는 미투운동은 모두의 생각을 깨우며 우리들 곁에서 숨죽이며 변화를 재촉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이 봄은 수다스럽고도 번잡하게 도착한 셈이다. 흥미로운 메뉴를 받아든 우리는 이 가닥에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할 것인지 사뭇 아리송해지는 것이다.

먼저, 지켜보는 마음. 믿거라 하는 정부가 백성의 마음을 어지럽게 한 일이 이미 얼마나 많았었는지. 또 이를 겪으며 입은 상흔이 아물기도 전에 옛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기운이 느껴질 때면 절망은 또 갑절이 되는 것이 아닌가. 작년 겨울, 이름도 없는 그 많은 사람들이 광장에서 나누었던 것처럼 이제도 기대와 희망으로 외치듯 지켜보아야 할 터이다. 갈라졌던 마음을 서로 보듬어야 하며 아물어 가는 상처를 헤집지 말아야 할 터이다. 평화의 길을 찾아가는 발걸음을 주목해야 하며 잘못 짚어 질곡에 빠지지 않도록 마음을 모아야 한다. 다가온 봄에 부끄럽지 않으려면 이제는 느슨하게 맡겨둘 일이 절대로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앞으로 백년이 이 봄에 달렸음을 기억하면서 대했으면 하는 것이다.

그리고 포용과 헤아림. 다짐과 함께 우리가 누렸으면 하는 호사가 있다면, 서로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아닐까. 툇마루에 내려앉은 따사로운 햇살처럼 서로의 마음을 녹이는 사랑어린 관심과 배려를 나눠야 한다. 지난날의 갈등과 겨룸은 함께 더 나은 길들을 찾아 보려는 모색이 아니었을까. 진정성을 확인하고 신뢰의 다리가 분명히 보인다면, 이제는 서로를 용인하고 받아들여 더 넓은 마당을 만들어 가야 한다. 오히려 더욱 너른 광장에 기대로 가득 찰 내일을 바라보면서, 차이와 단절을 극복하는 지혜가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함께 가면 더 멀리 갈 수 있다는 믿음을 회복해야 하며, 혼자 보다는 여럿이 나누는 세계가 풍성할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 넘실거리는 다양함 가운데 자신감도 더욱 회복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지난 실수를 감싸 안는 너그러움이 필요하며, 인정하고 바로잡는 용기도 필요할 터이다.

세상에 정답이 없다. 끊임없이 어느 편이냐고 물어 온다지만, 차라리 당당하게 `나는 옳은 편이고 싶다`는 게 보통 사람의 솔직한 심정이 아닐까. 나의 답만 옳다고 우기지 말 일이며, 당신은 틀렸다고 돌아서지도 말아야 한다. 모두 담고도 넉넉한 우리가 되어야 하며 함께 하고도 남는 너른 아량이 있어야 한다. 봄날 햇살이 따뜻한 만큼, 사랑으로 묶어내고 용기있게 다져야 한다. 우리에게 도착한 봄은 저렇듯 여러 가닥 기대를 던지고 있다. 겨울을 밀도있게 지나왔듯이, 이 봄에도 좋은 소식이 많았으면 한다. 봄이 가고 여름을 만날 즈음에, 우리는 어떤 세상을 만나고 있을까 사뭇 궁금해 진다. 이 봄 내내 불꽃같이 지켜보고 따스하게 품으면서 아름다운 봄날을 만끽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