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 빅투와르 산. 세잔은 거의 20년에 걸쳐 이 산을 그렸다. 그가 그린 것은 산이라는 `실재`가 아니라 산이 저기 있다는 `사실`이 아니었을까?
▲ 생 빅투와르 산. 세잔은 거의 20년에 걸쳐 이 산을 그렸다. 그가 그린 것은 산이라는 `실재`가 아니라 산이 저기 있다는 `사실`이 아니었을까?

태양은 저기에 실제로 존재하고 있나요? 정말로 그런가요? 고전역학은 태양은 실재한다고 말해요. 이와 달리 양자역학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어요. 도대체 고전역학과 양자역학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오늘은 저들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해요. (이 글을 쓰기 위해 참고한 것은 김상욱 교수의 `우주는 `매트릭스`인가: 현대 과학이 발견한 실재성`이라는 유튜브 강의입니다.)

1. 고전역학, 그러니까 뉴턴이 탐구한 것은 시간, 속도, 위치의 관계에 관한 것이었어요. 이것이 왜 중요하냐면 앞으로의 우주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예요. 생각해보세요. 지금 지구가 어디 있는지(위치)를 알고, 또 지구가 얼마나 빨리 이동하는지(속도)를 알면 한 시간 뒤의 지구의 상태를 알 수 있어요. 시간, 속도, 위치를 알면 과거의 상태를 추론할 수 있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어요.

2.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수학은, 우주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는 기초지식을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우주는 미분으로 쓰여 있고, 그것을 적분하는 과정을 통해 우주의 정보를 얻을 수 있어요. 어렵다구요? 그래요 이런 건 몰라도 돼요. 어찌 되었건 현재는 미분된 상태로 존재하고 이 현재를 이으면 미래가 됩니다. 미분된 현재를 서로 잇는 것 이것을 적분이라고 하지요. 이러한 미분과 적분을 배우기 위해 1차 함수, 2차 함수, sincos함수, 지수함수, 로그함수를 배웁니다. 결코 학생들을 괴롭히기 위해서 수학을 배우는 것이 아니예요. 다시 말하지만, 우주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수학을 배웁니다.

3. 그러나 양자역학 이후 시간, 속도, 위치를 통해 우주를 예측할 수 있다는 믿음은 깨지게 됩니다. 실험을 해봤더니, (이것이 이중슬릿 실험입니다.) 두 개의 문이 나란히 있다면 사람은 둘 중 하나의 문만 통과할 수 있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전자는 두 개의 문을 동시에 통과하더란 거예요. 정말 이상하지 않나요. 하나의 전자가 두 개의 문을 동시에 통과하다니.

고전역학은 시간과 속도를 알면 물체가 어디에 있을지를 추측할 수 있다고 말했어요. 그런데 전자는 전혀 그렇지 않아요. 시간과 속도를 알아도 전자는 여기에 있을 수도 있고 저기에 있을 수도 있고, 심지어 여기와 저기에 동시에 존재할 수도 있는 거죠. 양자역학은 전자의 속도를 안다고 해서 그 위치를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전자의 위치를 안다고 해서 전자의 속도를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4. 자, 그럼 여기서 이런 반론이 가능하겠군요. “전자는 아주 작은 미시세계고, 인간이 사는 세계는 거시세계야. 미시세계의 원리를 거시세계에 적용하려는 건 잘못된 생각이야.” 그래요. 그럴 수 있죠. 거시경제학과 미시경제학이 일치하긴 어렵듯이, 개인은 선할 수 있어도 그런 선한 개인이 모인 사회는 선하지 않을 수 있듯이, 그리고 전체는 늘 부분의 총합보다 크듯이 말예요.

5. 물리학자들은 아주 집요해요. 이런 반박을 재반박하기 위해서 실험의 규모를 키웠어요. 그러니까 두 개의 문이 나란히 있는 곳에 전자만 통과시킨 것이 아니라 전자보다 더 큰 것들을 통과시켜 보았어요. 전자에서 원자핵으로, 원자핵에서 원자로, 다시 원자에서 분자로. 그럼 다시 묻죠. 이렇게 실험 대상의 크기를 키워 두 개의 문을 통과시켰더니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두둥!!! 이렇게 큰 규모의 분자 역시 두 개의 문을 동시에 통과하더라는 거죠. 하나의 분자가 두 개의 문을 동시에 말입니다.

(원자와 분자는 크기는 매우 작으니까 여전히 미시세계라구요? 어차피 미시세계에서 일어나는 그니까 거시세계와는 관계없다구요? 정말 완전 우기기 대마왕이시군요. 그렇다면, 원자와 분자의 크기 차이를 설명해드리죠. 우선 원자는 전자와 원자핵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그런데 이 원자핵을 축구공만 하게 키운다면 전자의 크기는 어느 정도일까요? 아마 사과씨보다 더 작을 겁니다. 그리고 이런 식이라면 원자의 크기는 서울만합니다. 생각해보세요. 서울 한가운데 원자핵이 놓여 있고, 그 주변을 전자가 돌고 있어요. 그럼 나머지 공간엔 뭐가 있을까요? 당연히 아무것도 없죠. 전자는 그렇게 외롭고 그렇게 작습니다. 원자가 서울만하다면 분자는 지구가 아니라 태양보다도 크다고 할 수 있어요. 이제 아시겠죠. 원자에 비해 분자는 결코 미시세계라고 부를 수 없다는 걸 말예요.)

6. 그런데 이렇게 실험 대상의 크기를 키우면 키울수록 두 개의 문을 통과하는 조건이 아주 까다롭다고 하는군요. 분자가 두 개의 문을 통과할 때 어떤 간섭도 받지 않아야 한다고 해요. 지구만한 물체가 두 개의 문을 통과하는 중인데, 어쩌다가 축구공만한 크기의 수소나 산소 원자와 땡하고 부딪치면 지구는 하나의 문만을 통과한다는군요. 그래서 분자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진공도를 더 높여야 한다는군요.

7. 크앗!!! 그런데 정말 대단하군요.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전자든 분자든 문을 통과하려 할 때 어떤 식으로든 간섭이 일어나면 다른 행동을 보인다는 것 말예요.

8. 사실 이것을 설명하는 방법은 간단해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전역학적인 생각을 버리면 됩니다. 고전역학은 전자가 실재로 존재한다고 말해요. 전자 대신, 인간, 그것도 아니면 지구나 달, 태양, 우주 무엇으로 바꾸어도 상관없어요. 여하튼 고전역학은 이런 대상이 실재로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자, 다시! 고전역학은 달이 실재로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달이 존재한다는 것은 달의 고유한 본질이 있다는 것을 뜻해요. 달의 본질이란 다름이 아니라 달이 고유하게 가지고 있는 속도와 위치예요. 당연해요. 달은 지구를 공전할 때 고유한 속도와 위치를 가지거든요. 달은 1초에 1km정도를 움직이며 지구를 돌고 있어요. 그래서 30일이면 지구를 한 바퀴 돌아버립니다. 달이라는 사물에는 이런 고유한 본질이 존재합니다.

9. 그런데 현대물리학 혹은 양자역학은 이런 달이 실재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건 진짜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관찰된 것일 뿐이야, 라고 말해요. 저 달은 진짜가 아니라 하나의 사건이라고, 달이 저기 있다는 것은 하나의 정보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10. 앵? 정말 말도 안 되는 주장이군요!! 그럼에도 이들은 더 크게 외칩니다. 사물이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찰, 사건, 정보! 이것이 전부다. 무슨 말이냐구요? 저 달이 존재하는 것은 하나의 가능성이며 확률이라는 뜻입니다.

▲ 공강일<br /><br />서울대 강사·국문학
▲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

달은 제가 쳐다보지 않을 때 존재할 수도 있고,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달은 수많은 것들과 관계 맺고 있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을 확률보다 존재할 확률이 훨씬 높습니다. 하지만 다른 대상과 관계 맺음이 훨씬 훨씬 적은 전자는 지금 이 자리에 있다가 갑자기 사라질 수도 있고, 이 자리와 저 자리에 동시에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11. 1989년 존 휠러는 `존재는 정보에서 기인`(it from bit)한다, 라고까지 밀어붙입니다.

12. 그런데 물리학에서 이런 생각이 미처 발아하기도 전에 철학에서 이런 생각은 만개했던 적이 있어요. 그 주인공이 바로 비트겐슈타인예요. 이 불세출의 철학자는 “세계는 사물의 총체가 아니라 사실의 총체다”(The world is the totality of facts, not of things)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달은 저기에 실재하는 걸까요, 아니면 그건 그냥 사건에 지나지 않는 걸까요? 이제 여러분이 답할 차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