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병서곡` 들으며 힘찬 전진 약속

▲ 박천영 전 포항음악협회장
입춘도 지나고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우수도 넘긴 지난 24일 포항문화예술회관에서는 포항문화재단 설립 1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로 우리나라 최고 클래식 연주단체인 KBS교향악단의 초청연주회가 있었다.

연주시작 30분전부터 청중들은 일치감치 대공연장의 객석을 가득 메웠고 `러시아 음악의 수채화`라는 주제로 열리는 무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작년 연말 뜻하지 않았던 큰 지진으로 충격에 빠져 있던 시민들과 지역 클래식애호가들에게 이번 KBS교향악단의 연주회는 새봄을 기다리는 것 같은 설렘이 되었고 이어지는 긴 여진의 아픔에 시달리던 무채색의 도시에 위로와 희망을 채색하는 한 줄기 빛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세계 최고 수준의 지휘자로 평가되는 러시아의 대표 지휘자인 알렉산더 라자레프는 차이콥스키 환상 서곡 `햄릿`으로 첫 무대를 열었다.

침울함이 감돌던 첫 선율은 서서히 고뇌와 갈등을 되뇌던 햄릿의 내면을 더욱 깊이 있게 표현해 가면서 연주자들뿐만 아니라 관객들까지도 교향악의 흐름 속에 점점 더 몰입시키는 지휘자의 월등한 능력을 엿볼 수 있었다.

지역무대에서는 쉽게 감상할 수 없었던 곡이었지만 러시아 음악계의 거장답게 교향악단원들과 밀도 있는 공감대를 형성시키며 곡의 감성을 열정적으로 표현해주었다. 그는 러시아 국립볼쇼이극장의 상임지휘자 겸 예술감독을 겸임했던 탄탄한 경력의 지휘자로서의 면모를 잘 보여주었다. 어떤 때는 곡이 끝나면 객석 아래쪽으로 내려와서 함께한 연주자들을 향해 관객들과 같이 박수를 보내는 장면이나, 관객들의 다소 거슬리는 박수소리에도 여유로운 몸짓으로 넘어가는 모습은 쇼맨십의 차원을 넘어서 함께한 연주자에 대한 존중과 관객에 대한 배려와 사랑으로 느껴졌다. 많은 조명이 비춰지고 시선을 한 몸에 받는 무대에서 지휘자의 배려와 겸손을 통해서 공연예술의 기본적인 특징과 속성까지도 넉넉히 헤아리며 풀어가는 그의 배려와 멋진 품격에 박수를 보낸다.

세계 최고 권위의 퀸 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씨의 무대로 이어진 바이올린 협연은 이날 연주회의 `금상첨화`였다.

`극과 극은 통한다` 라고 했던가?

협연자의 활은 깊고 역동적이면서도 온화했고 음색은 풍부하면서도 감미로웠으며 어떤 음표도 그녀의 활 끝에서 허투루 내보내지 않았다. 이러한 탁월한 기량은 `스코틀랜드 환상곡`의 진면목을 들려주었고 평온함이 흐르는 민요와 무곡에 그리움을 덧입혀 주었다.

또 `퀸엘리자베스콩쿠르` 우승자에게만 특전으로 대여된다는 `허긴스(Huggins)`라는 이름의 인류의 유산인 스트라디바리우스로 함께 감상할 수 있게 된 것도 큰 기쁨이 되었다.

앙코르곡은 포항시의 힘찬 전진을 기원하며 주페의 `경기병서곡`으로 선정되었다. 객석에 앉아있었지만 진짜 말을 타고 있는 듯한 즐거움으로 모든 관객들이 얼굴에 환한 미소를 머금고 함께 박수를 보냈다. 앙코르 한곡으로 연주회를 끝내는 것이 많이 아쉬웠지만 2시간을 넘긴 열정적인 공연에 한 번 더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이번 KBS교향악단 연주회는 포항의 땅속을 구르릉대며 우리들의 일상을 위협하던 지진으로 인한 공허함과 두려움에 있는 포항시민들에게 봄의 소리와 향기로 희망을 채워주는 치유의 감성 음악회가 되어 잔향이 오랫동안 남을 것 같다.

좋은 연주회를 섭외하고 주최한 포항문화재단의 설립 1주년을 축하하며 앞으로도 포항 문화성장의 중추기관으로 행복한 미래로 발전해 가는데 큰 디딤돌이 되기를 바란다.

또한 포항 클래식음악의 중심이 되는 포항시립교향악단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사랑을 기대하며 자생 지역문화예술단체들의 지속적인 발전을 함께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