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반덤핑 관세 등 조치에
대처 미흡, 골든타임 놓쳐”
협회 정총서 이례적 비판

미국의 초강력 통상압박으로 철강 수출길이 완전히 막힐 위기에 놓이자 파열음이 터져나오고 있다.

철강업계는 “생존의 위협을 받을 위기에 놓였는데도 정부가 그동안 뭘 했느냐”는 볼멘소리를 내놓았다. 정치권의 비판은 그렇다 쳐도 업계가 정부를 상대로 날선 비판을 퍼부은 것은 극히 이례적으로, 업계가 느끼는 위기감을 짐작케 해준다.

대미수출 의존도 최대 80%
53% 고관세 땐 생존 위협
권오준 “협회 중심으로 대처”
수십년간 고위공직자 차지
상근부회장 선임도 반발

지난 21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한국철강협회 정기총회에서 철강업계 CEO들은 정부를 향해 일제히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그동안 미국과의 통상협상에서 정부가 미온적으로 대처해 온 것에 대한 불만을 한꺼번에 표출한 것이라는게 업계 관계자의 분석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무역보복에 강펀치를 휘두르자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은 `안보는 안보, 통상은 통상`이라는 원론적인 투트랙 전략을 밝혔으나 구체적인 대처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철강업계 CEO들은 지난 설 연휴 기간 발표된 미국 정부의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53%의 고관세 규제안에 대해 정부의 대처가 미흡했다고 초점을 맞췄다.

정부가 바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해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것이다. 무역확장법 232조는 미국으로 수입되는 제품이 통상 국가안보에 문제가 될 경우 긴급하게 수입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한 법으로,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는 트럼프 미 대통령이 자국의 철강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지난해 6월 발동했다.

세아제강, 넥스틸, 휴스틸 등 국내 강관업체들은 미국 측이 53%의 고관세 제재안을 현실화할 경우 현지 공장을 설립해야 하는 불가피한 상황으로 내몰리게 됐다. 미국 현지공장이 없는 넥스틸은 미국 수출 의존도가 70~80%에 달하고, 휴스틸은 전체 매출 가운데 미국 수출 비중이 40%를 넘는다.

이번 고관세 조치가 적용될 경우 세아제강은 대미 수출액 약 5천700억원(2016년말 기준)의 25%에 이르는 연간 6천억원의 피해가 발생하게 된다. 대미 수출 비중이 높은 넥스틸은 전체 매출액(2천851억원)의 80%에 육박하는 2천300억원의 피해가 예상된다.

이에따라 정부가 특단의 협상카드를 내놓지 않는 한 이들 업체는 존폐기로에 서게 됐다. 세아제강 넥스틸의 위기는 포항 지역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이날 총회에 참석한 업계 CEO들은“트럼프 미 대통령의 이같은 돌출 발언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한미간의 정치적 관계에서 오는 보복성에 가깝다”면서 “지금이라도 청와대와 정부가 나서서 백악관과 직접 소통해서 통상압박을 풀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권오준 포스코 회장은 이날 “무역확장법 232조 등 통상문제와 관련해 통상 담당 임원급 협의체를 구성하는 등 협회가 중심이 돼 적극 대처해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이제부터 정부에만 의존하지 말고 철강업계 스스로가 자구노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철강협회 총회에서 정부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는 등 분위기가 미묘하게 흐르면서 그동안 퇴직공무원 몫으로 할애했던 철강협회 상근부회장 자리를 놓고도 신경전이 벌어졌다.

1993년 이후 지난 25년 동안 철강협회 상근부회장은 철강업과 무관한 정부 공직자 출신이 맡아왔다. 국제특허연수원장, 한국전력거래소 이사장,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 원장 등 주로 정부 및 공공기관 고위직을 지낸 인사들의 자리마련에 제공됐다.

이날 상근부회장 선임 문제를 놓고 3시간 가까이 격론이 벌어졌으나 끝내 적임자를 결정하지 못하고 공석상태로 남겨 놓았다.

참석한 철강업계 대표들은 “이제 더 이상 `낙하산`은 안 된다”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정부에 대해 보여줄수 있는 강한 반발을 행동에 옮긴 것이다.

한 철강업체 대표는 “협회 상근부회장 자리는 업계의 이익을 지키고 대변하는 자리이지 관련성도 없는 공무원이 월급 받으러 오는 자리가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대표는 “그동안 정부가 미국의 통상압력을 제대로 막아줬으면 이런 얘기가 나왔겠느냐”며 “정부에 대한 불신이 그만큼 깊다”고 전했다. 또 다른 기업의 대표는 “2016년 미 상무부가 포스코 열연강판에 대해 불합리한 조항을 내세우며 반덤핑 관세를 부과할 때부터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응했어야 했다”며 “작금의 사태는 이미 예고된 재앙”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총회에는 협회장인 권오준 철강협회장, 우유철 현대제철 부회장, 장세욱 동국제강 부회장, 이순형 세아제강 회장, 김창수 동부제철 사장, 손봉락 TCC동양 회장, 홍영철 고려제강 회장, 박훈 휴스틸 사장 등 회원사 대표 20여 명이 참석했다.

/김명득기자 mdkim@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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