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재휘<br /><br />논설위원
▲ 안재휘 논설위원

1592년 조선의 임진왜란 비극 이야기는 일본을 보고 온 통신사들의 엇갈린 보고에서 시작된다. 황윤길(黃允吉)은 “반드시 병화(兵禍)가 있을 것”이라고 침략을 예고했으나, 김성일(金誠一)은 “전혀 그런 조짐이 없다”고 반론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인상을 묻는 질문에도 황윤길은 “눈에 광채가 있고 담략이 남달라 보였다”고 말했지만 김성일은 “눈이 쥐와 같고 생김새는 원숭이 같으니 두려울 것이 못 된다”고 보고했다.

후세의 사가(史家)들은 두 사람의 관점 차이를 당파의식의 발로로 해석한다. 황윤길은 정사였음에도 서인(西人)이어서 동인(東人)인 부사 김성일의 말이 달랐다고 보는 것이다. 문제는 당시 조정을 장악한 세력이 동인이었다는 정치환경이었다. 말하자면 엄중하게 `사실` 여부를 가려내야 할 `안보정보`를 놓고 엉뚱하게 파워게임을 벌였다는 뜻이어서 한심하고도 허탈한 역사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오늘날 한반도 `핵` 문제는 420여 년 전 임진왜란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막대하다. 여차하면 지구멸망을 초래할지도 모를 `3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되리라는 끔찍한 예측마저 붙어 다닌다. 대한민국이라는 한 나라가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의 안위와 직결되는 치명적 난제로 비화돼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 정치권과 국민들은 날이 갈수록 `당파적 편견`의 노예가 돼가고 있어서 이만저만 걱정거리가 아니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북한 핵문제`에 대한 온 세계의 관심이 더욱 깊어졌다. 진보정권이 들어선 이래 `북한 핵` 문제에 대한 접근법이 사뭇 달라지면서 여야 정치권의 충돌 폭이 점점 더 깊어지고 있다. 문재인정권은 남북교류에서 `북한 비핵화`의 단초를 찾을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보수야당은 비판적이다 못해 색깔론까지 동원하고 있는 형국이다. 기왕에 정권을 잡았으니, 얼마간은 정부여당이 하고 싶은 대로 두고 보는 게 미덕이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 그래서 그 설계도대로 안 될 적에 그때 비판하고 책임을 물으면 되지 않겠느냐는 일반론적인 접근이다. 하지만 사안 자체가 국민안위와 직결되고, 나아가 국가존폐에 연결되는 만큼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이 반론의 요체다. 한 번쯤은 실패해도 되는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부가 `평창올림픽 후 한미훈련 재개` 여부에 대해 답변을 머뭇거리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북한이 드디어 협상조건으로 `핵무기 개발`과 `한미연합훈련`을 등치시키는데 성공한 게 아닌가 싶다. 세계를 줄곧 속이고 극비리에 지속해온 `북핵개발`의 특성을 간과해선 안 된다. 북한은 안 하는 척하기만 하면 되고, `한미 군사훈련`은 정말로 중단해야 하는 것이다. `핵 무력 완성`을 위해 시간을 벌려는 저들의 속셈이 들어맞아가는 양상이라면 정말 큰일이다.

진보민심은 북한에 대한 경계심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북한은 남한을 향해 핵미사일을 절대 쏘지 않을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믿음까지 보인다. 나아가 `통일이 된다면 북한의 핵무기는 유익한 것`이라는 위험한 논리에도 더러 접근한다. 북한이 입버릇처럼 주장하는 `우리민족끼리`라는 구호에 휘둘려 맹방 미국에 대한 모진 비판을 내놓기도 한다.

대한민국 역사에 대한 몰각(沒覺)이 문제다. 우리가 이 만큼 번영을 일궈내어 올림픽을 치를 만큼 중견국가로 발돋움한 것은 온전히 자유민주주의를 바탕으로 우방들과 잘 지낸 덕분이다. 특히 미국과의 군사동맹은 절대적인 울타리였다. 사사건건 색안경 너머로 보고 싶은 것만 보면서 반대를 위한 반대에 골몰하는 이 수치스러운 `당파적 편견`의 유전자에 언제까지 휘둘릴 것인가. 임진왜란 전 일본을 일 년 동안이나 함께 보고도 딴 소리를 한 김성일보다 훨씬 더 어리석은 인물은 동인 정치꾼들의 `당파적 편견`에 휘둘려 온 백성들을 왜군(倭軍)에 짓밟히게 만든 선조(宣祖)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