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령에서 연화봉을 올라타고 비로봉을 너머 어의곡으로 내렸다. 점심도 저녁도 아닌 밥을 먹고 도담삼봉과 석문까지 보았다. 날은 추웠다. 다져진 눈에 스틱이 박히자 눈은 자리를 만든다고 끼이익, 삐이익, 앓는 소리를 냈다. 비로봉의 바람은 바람이라 부를 수 없는 무엇이었다. 바람은 한라산보다 세어 고목조차 없었다. 그곳에서 나는 태어나 한 번도 대면하지 못한 겨울이란 계절을 만났다. 도담삼봉 너머 저 멀리 하얗게 보이는 산을 걸어왔다.
▲ 죽령에서 연화봉을 올라타고 비로봉을 너머 어의곡으로 내렸다. 점심도 저녁도 아닌 밥을 먹고 도담삼봉과 석문까지 보았다. 날은 추웠다. 다져진 눈에 스틱이 박히자 눈은 자리를 만든다고 끼이익, 삐이익, 앓는 소리를 냈다. 비로봉의 바람은 바람이라 부를 수 없는 무엇이었다. 바람은 한라산보다 세어 고목조차 없었다. 그곳에서 나는 태어나 한 번도 대면하지 못한 겨울이란 계절을 만났다. 도담삼봉 너머 저 멀리 하얗게 보이는 산을 걸어왔다.

△소리

단단하게 다져진 눈 위에 스틱이 박힌다. 눈과 눈이 스틱이 들어설 자리를 만든다고 삐이익, 끼이익 앓는 소리를 낸다. 내가 비로봉에서 비명을 질렀을 때야 눈이 내는 소리가 비명에 가깝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한 철학자의 말처럼 `시간은 늘 늦었음에 멈춰 있다.`

산악회 집행부는 갈팡질팡했다. 산행 전날, 최종 점검하면서 날씨가 추워질 것을 대비하여 회장님과 수석대장님은 산행코스를, 어의곡에서 올라 비로봉을 찍고 국망봉, 상월봉을 지나 다시 어의곡으로 되돌아오는 코스로 급 변경하였다. 그러나 막상 산행 날이 되자, 날씨는 호전되었다. 원래의 코스가 다시 고려 대상이 되었다. 원래의 코스란 죽령에서 연화봉을 타고 비로봉을 너머 어의곡으로 내려오는 코스였다. 원래의 연화봉 코스와 변경된 국망봉 코스의 거리차는 얼마되지 않았지만, 국망봉 코스가 바람을 맞서는 시간이 훨씬 적었다.

집행부는 회원들을 생각하여 국망봉 코스로 진행하고 싶어했고, 회원들은 연화봉 코스로 가고 싶어했다. 나도 내심 연화봉 코스를 바랐다. 이유는 단순했다. 출발한 곳으로 되돌아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 또 추우면 얼마나 춥다고 그러는 거지, 나는 산을 알지 못하므로,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연화봉 코스로 정해지길 바랐다.

회원들의 바람대로 연화봉 코스로 정해졌다. 죽령탐방소의 직원은 산행을 막지는 않았지만, 아이젠 착용이 필수라고 말했다. 임도는 넓었고, 이 길은 제2연화봉에서 연화봉까지 오래도록 이어졌다.

지난 번 황장산에서 바라본 연화봉은 까마득했는데, 막상 연화봉을 오르고 있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눈으로만 본 산을 며칠이 지나 다시 걷는 일, 그것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고, 시각적 이미지를 체험으로 바꾸어 놓는다. 대간을 따라 이어서 이어서 걷는 일. 그것이 어떤 느낌인지, 어떤 의미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바람

제2연화봉은 연화봉으로, 연화봉은 다시 제2연화봉으로 이어진다. 바람은 왼쪽에서 사납게 몰아쳤다. 귀가 떨어져 나갈듯이 아렸다. 코는 얼어 얼얼했다. 사람들의 눈썹에도 속눈썹에도 눈이 맺혔다. 나도 다르지 않았겠으나 나는 나를 볼 수 없어, 얼굴에 눈꽃 틔운 사람들을 보며 웃었다.

소백산 천문대를 지나면서 웃음은 사라졌다. 한 시간을 훌쩍 넘게 걸었는데 몸은 데워지지 않았다. 다른 산 같으면 바람막이를 벌써 벗었을 텐데 벗을 수가 없었다. 장갑을 낀 손은 얼어 스틱을 쥘 수가 없었다. 스틱을 배낭에 대충 끼우고 손을 주머니에 넣었지만 언 손은 녹질 않았다.

길은 산의 능선을 따라 이어졌지만, 때론 왼쪽으로 때론 오른쪽으로 번갈아가며 치우쳐져 이어졌다. 두 개의 길은 확연히 달랐다. 오른쪽으로 뻗은 길은 봄처럼 따뜻했으나, 그 길이 다시 왼쪽으로 치우치면 추위는 뼈에 닿았다. 왼쪽 발이 시려오기 시작하자 겁이 덜컥 났다. 얼어죽는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제1연화봉을 지났나 지나지 않았나, 산 하나를 앞에 두고 볕이 자글자글 쏟아진 양달을 만나 우리는 소주와 밥을 선 채로 마시고 먹었다. 도수 높은 소주는 외려 달았고, 서로가 싸온 밥과 술을 서로에게 먹이며 몸과 마음이 녹았다.

허나 비로봉은 많은 의미에서 절정이었다. 왼쪽에서 불어온 바람은 사람들을 자꾸 오른쪽으로 오른쪽으로 밀어세워 내려오는 사람도 오르는 사람도 우측 통행을 했다. 비로봉 정상에서 바라본 세상은 절경이었다. 그 절경을 오래 볼 수 없었다. 추위는 절망적이었고, 어의곡 삼거리까지 북쪽을 향해 곧게 뻗은 길에서 절망은 절정을 이루었다. 북서풍을 맞으며, 게처럼 400m밖에 되지 않는 길을, 끝나지 않을 것처럼 걸었다.

△쏜살같이

어의곡 삼거리에서 어의곡까지, 도상 거리 4.2km 실제 거리 5.3km. 나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이화 님`이 내리막길을 보자 달리기 시작했다. 아니 날았다. 그녀는 쏘아 놓은 화살과도 같았다. 후예가 떠올랐다. 후예는 활을 잘 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요임금 때 변이 생겨 하늘에 태양이 열 개나 나타나 가뭄과 더위로 곡식과 초목이 말라죽었고 더불어 사람 역시 굶주렸다. 요임금이 후예를 시켜 해를 떨어뜨리게 했다. 이화 님은 후예의 화살처럼 곧게 날아갔다.

맹자는 후예의 활쏘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후예가 사람들에게 활쏘기를 가르칠 때 그 뜻을 당기는 것에 두었다.” 후예는 활이 과녁에 맞고 안 맞고가 아니라 활을 당기는 것에 집중하라고 가르쳤다. 활을 과녁에 맞추어야 한다는 생각은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활을 당기는 손을 흔들고 종국에는 과녁마저 흔들어 놓는다. 화살에 과녁에 꽂히는 것은 당겼던 활을 놓은 후에 일어난다. 그러므로 활을 쏘는 사람은 활을 놓기보다 당기는 일에 더 집중해야 한다.

이 간단한 교훈을 너무도 간단히 잊어버린다. 나는 어떻게든 그녀를 따라잡으려 뛰었지만, 발목과 무릎에 무리가 갔다. 내가 할 일은 내려오는 것이지 누군가를 따라잡는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발목과 무릎이 아픈 것은 내 몸에 덕지덕지 붙은 살 때문인데, 이 살과 결별하지 않는다면 나의 달리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활을 쏘는 사람이 활을 당기는 것에 집중하려면, 활을 당기는 힘을 길러야 하듯, 산을 타려면 나는 살을 빼야 한다. 이화 님은 쏜살같이 내려갔고, 나는 나의 살과 함께 더디게 더디게 산을 내렸다.

△알탕

왜 이름을 이렇게 불렀는지는 모르겠다. 알몸으로 몸을 씻는다고 해서 `알탕`이라 부르겠거니 생각하지만, 이 말에서 느껴지는 음흉함을 지울 수 없다. 영하 14도. 시냇물은 얼어 있었고, 얼음의 두께는 층층이 쌓여 오늘 알탕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허나 다리 아래 양지바른 곳은 제법 웅덩이가 될 만큼 얼음이 녹아 있었다. 참 성실하게 알탕할 곳을 찾아놓은 회장님이 원망스러워 웃었다.

 

▲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
▲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

옷을 벗고 차마 물에는 들어갈 수 없어 바가지로 물을 떠 세수를 하고 가슴에 물을 바르고 머리를 감고는 연거푸 세 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세 번, 더 이상은 도저히 불가능했다. 물을 퍼부으며 왼손으로 오른쪽 가슴을 문지르자 살갗이 알알이 깨졌다.

오후 3시. 점심도 저녁도 아닌 밥을 먹었다. 짜장밥은 맛있었고, 소주는 여전히 달았다. 혼자 국망봉까지 다녀온 `디오 님`은 우리가 밥을 먹는 사이 부지런히 내려왔다. 원래의 계획대로 오후 4시에 출발할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단양팔경 중 하나인 도담삼봉과 석문을 볼 수 있었다.

추웠다. 추운데도 날씨는 맑아 먼 하늘이 새파랗게 다가왔다. 다시 말하지만 추웠다. 추웠으나 좋았다. 그 추위까지도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