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재휘<br /><br />논설위원
▲ 안재휘 논설위원

“뭐든지 다 말씀하세요. 여러분 말씀을 존중해서 `내 마음대로` 하겠습니다.” 코미디 프로에 나오는 말장난이 아니다. 요즘 야당 정가에서 굴러다니는,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여당의 이른바 `쇼통`을 비아냥대는 말이다. 여론을 듣는 척만 하고 사실상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버리는 것은 `제왕적 통치`를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권력행태다. 이게 결단코 지지난해부터 전국을 달구었던 `촛불민심`에 부합하는 정치행태는 아닐 것이다.

문재인정권이 `개헌정국`을 주도하기 위해 여론전에 나섰다. 연초 기자회견에서 문 대통령은 개헌의 큰 줄기인 권력형태와 관련해 `대통령 4년 중임제`를 내놓았다. 이것은 누가 봐도 집권당에 내린 강력한 가이드라인이다. 대통령의 높은 지지도가 여당을 떠받치고 있는 정치역학 속에서 이 가이드라인은 벗어나서는 안 될 금줄일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이제 이 금줄 안에 꼼짝없이 갇힌 셈이다.

예상대로 민주당이 내비친 개헌안 얼개는 대통령 4년 중임제를 담고 있다. 헌법 전문(前文)에는 부마항쟁, 5·18민주화운동, 6월항쟁, 촛불시민혁명을 모두 넣기로 했단다. 경제민주화 조항은 권유조항에서 강제조항으로 바꿔 국가통제를 못 박겠다고 한다. 지방자치분권 확대를 위해 `지방정부`라는 표현을 개헌안에 담는단다.

민주당은 이날 헌법 제4조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구절을 `민주적 기본질서`로 고친다고 발표했다가 철회하는 소동을 빚었다. 민주당 대변인은 `자유`를 뺀 데 대해 “보다 넓은 의미의 민주주의”라고 친절하게 설명까지 했었다. 그러나, 불과 4시간 뒤 `대변인의 실수`라며 없던 일로 만들었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대들보 개념을 놓고 이런 소홀이라니, 국민들은 깊은 의심에 빠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가균형발전 선포식에서 “중앙정부가 주도했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자치단체가 정책과 사업을 기획하고 중앙정부가 지원하는 시스템으로 전환할 것”이라고 말했다. 진정한 지역발전을 학수고대하는 지역민들에게는 참으로 달콤한 말이다. 그러나 개헌정국과 맞물려서 보면 짚어봐야 할 대목이 한둘이 아니다.

지역민들이 소원하는 `지방분권형 개헌` 개념은 필연적으로 `제왕적 대통령제`의 혁신과 맞물릴 수밖에 없다. 행정수반인 대통령이 갖는 무소불위의 권한은 중앙집권적 통치구조에 맞닿아 있다. `지방분권형 개헌`이 고작 헌법에 `지방정부`라는 단어 하나 넣자는 수준은 아니다.

민주당이 내놓은 개헌안 얼개를 보면 과연 문재인정권이 개헌을 원하고 있는지 헛갈리게 한다. 아직 성격규정조차 끝나지 않은 `촛불시민혁명`을 굳이 헌법 전문에 넣자고 우기는 것은 과욕이거나 어깃장이다.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넣었다 뺐다 해프닝을 벌이는 것을 `부주의`라고 변명하는 태도도 문제다. 지지율에 취한 오만방자가 아니라면 최소한 은연중 본심을 드러낸 애드벌룬일 가능성이 높다.

자유한국당이 `지방분권 개헌`에 대해서 반심(叛心)을 보이는 일은 정말 유감이다. 홍준표 대표를 비롯한 일부 의원들의 `지방분권 개헌` 폄하발언은 명백한 작전미스다. 그러나 민주당이 `제왕적 대통령제`를 고수하기 위해 실효성도 없는 `지방분권` 조항을 끼워 팔기 하는 수준의 `개헌`이라면 이 또한 심각한 문제다. 무구한 지역민심을 기득권 수호의 방패막이로 쓰려는 꿍꿍이라면 결코 용납될 수 없다.

결국 대통령의 제왕적 권한이 어떤 형태로 분산될 것이냐가 관건이다. 분산되는 권한이 대폭 지방정부의 자율권 확대로 연결돼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래야 비로소 `지방분권 개헌` 지도는 완성된다. `시도지사가 참여하는 제2국무회의의 제도화`는 기대해볼만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대통령의 통치스타일이 “뭐든지 다 말씀하세요. 여러분 말씀을 존중해서 `내 마음대로` 하겠습니다”는 범주에 머물러 있다면 더욱 그렇다. `개헌정국`이 수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