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명 리

한 할머니가 가네

텅 빈 유모차를 몰고 햇빛 속을 가네

저 텅 빈 유모차에

오옹 텅 빈 유모차에 넘치게 가득한 백일(白日)!

가네, 댓바람에 휩쓸린 멧새 울음 속을

내 어머니의 어머니의

살아 생전이 가네

세월의 삽날에 허리 꺾인

바퀴살이 아직은 쓸 만한 유모차가 가네

다마 일그러진 쇠붙이

젖먹이 울음소리 텅 빈 유모차들도

상(傷)한 풀잎을 지상으로 떠받치는

저토록 단단한 힘이 되네

한 생을 신산(辛酸)한 삶을 살았을 할머니의 유모차를 보면서 시인은 빛을 읽어내고 있다. 텅 빈 유모차를 밀고 가는 것은 늙은 할머니가 아니라 신의 은총과도 같은 빛이라는 것이다. 좌절과 낙망, 힘겨움과 상처까지도 사랑과 축복, 은총을 비춰주는 빛이 이 땅 소외되고 어두운 곳에 소복 스미는 날을 기다리고 소망하는 간절한 시인의 마음을 본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