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 영

가을 산이 옷을 벗고

눈을 뜬다

갈대들도 마른 발짝 소리를 낸다

지난 여름 우리는 참으로 뜨겁게 불타올랐다

그러나 이제 조용히 눈을 감고

스스로의 중심을 향해 돌아서야 할 때

가을 산이 갈색 눈을 뜨고

뿌리 깊이에서 다시 한번 불끈 솟는다

왕성한 생명의 시간에 껴입었던 성장(盛裝)을 벗는 가을산을 바라보며 시인은 깊은 뿌리의 힘에 마음이 가 닿는다. 뜨겁게 타올랐던 여름 산처럼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치열하게 싸웠던 시인에게도 가을산은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잎을 내려놓는 가을산 나무가 든든한 뿌리에 힘을 모으듯 민주화를 일궈낸 민중의 깊은 저력에 대한 신념에 대한 확신을 피력하고 있음을 본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