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재휘<br /><br />논설위원
▲ 안재휘 논설위원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은 태양의 신인 아폴론(Apollon)과 달의 여신인 아르테미스(Artemis)가 만나는 8년 주기에 맞춰서 열렸다. 갈등요인이었던 태양력과 태음력의 타협점이 바로 8년주기였던 것이다. 이 8년주기가 4년주기의 올림피아제로 바뀐 이유는 `올림픽 정신`과 관계가 있다. 전쟁을 피하고 그리스의 단합을 위해 축제의 주기를 줄여야 한다는 지혜가 들어 있었던 것이다.

2018평창동계올림픽 개막이 20일도 채 남지 않았다. 북한선수단은 5개 세부종목에 선수 22명 등 총 46명으로 결정됐다. 관심을 끌고 있는 여자 아이스하키는 북한선수 12명을 엔트리에 넣되 이 중 3명이 경기에 출전하는 것으로 귀결됐다. 올림픽에 오는 북한 인원은 총 700명 안팎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여야 정치권은 개막식 때 남북이 `한반도기`를 들고 공동 입장하는 것과 관련해 연일 날선 공방이다. 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이 정부는 평창올림픽이 아니라 평양올림픽을 하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이에 대해 “평화올림픽을 색깔론으로 몰고 간다”며 맹비난했다. 우리는 지금 북한의 `핵전쟁 협박`이라는 살얼음판 위에서 세계인들을 초청해 잔치를 벌여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다. 올림픽을 망쳐서도, 북한의 음모에 놀아나서도 안 되는 형편이다. 연초 북한 김정은의 신년사에서 비롯된 딜레마는 뱉자니 달콤하고 삼키자니 쓴 고약한 왕사탕이다.

마식령스키장 합동훈련도, 금강산 전야제도 모두 우리 정부가 먼저 내놓은 걸 보면 문재인정권은 지금 도박을 하고 있음이 자명하다. 북한의 평화공세는 국제제재의 예봉을 무디게 하고, 한미동맹을 흔들고, 핵무기와 미사일 기술 완성의 시간을 벌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그런데도 이 정부는 지금 북한의 올림픽 참가에 온 밑천을 다 걸고 있다.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논란에서 드러난 가장 흥미로운 민심은 이제 우리 국민들이 더 이상 `불공정`에 대해서 인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론조사에서 2030세대가 단일팀 구성에 반대하는 비율이 가장 높은 현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젊은이들은 선수들의 절망을 남의 것으로 인식하지 않음을 뚜렷이 드러내고 있다. 조금 더 큰 눈으로 바라보면 한반도기를 들고 입장하는 일 정도는 받아들일 만하다. 삼수(三修) 끝에 겨우 따낸 올림픽에 북한이 막판에 밥숟갈 얹는 것이 다소 얄밉기는 하다. 그래도 전례가 없는 것도 아니니 받아줄만 하다. 하지만 마식령스키장, 금강산 행사를 우리가 제안했다는 대목은 자존심이 좀 상한다.

정직하게 말해서, 북한에는 `선동선전대`는 있을망정 순수한 `예술단`은 없다. 평양에서 온통 사상교육용으로만 공연하던 콘텐츠라면 더욱 그렇다. 예술단이든 응원단이든 북한의 많은 젊은이들이 대한민국의 번영된 모습을 보는 게 나쁠 이유가 없다는 견해에는 일리가 있다. 그들이 어떤 모습을 보일런지 흥미롭다. 대통령과 총리, 장관의 인식부족에 따른 말실수들이 귀에 걸린다. 선수촌으로 달려간 문재인 대통령이 `불공정·불통`에 속이 잔뜩 상한 선수들 앞에서 `역사의 명장면` 운운한 것은 마땅한 위로가 아니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여자 아이스하키 팀을 일러 “메달권에 있지 않다”고 한 말은 올림픽의 기본정신마저도 몰각한 실언이다. 아이스하키를 잘 모르는 도종환 문체부장관의 언급들도 부실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제 올림픽의 본질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우리가 무진 애를 써서 만들어낸 올림픽 무대가 북한의 선동선전 굿판이 돼서는 안 된다. 까마득한 옛날, 기원전 776년 그리스에서 열린 첫 올림픽이 그랬듯이 평화를 위한 올림픽, 평화가 시작되는 올림픽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올림픽이 끝나면 북한은 필경 완성도 높은 미사일을 다시 쏘아댈 텐데, 그때 우리는 또 무슨 말을 내놓아야 할까 그게 벌써부터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