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의 `아니면 말고`식 갈지자 정책추진이 심각한 지경에 다다르고 있다. 교육부는 오는 3월 신학기부터 적용할 방침이던 `유치원·어린이집 방과 후 영어수업 금지` 정책을 결국 없던 일로 돌렸다. 다른 정책들도 마찬가지였다. `수능 절대평가 확대`도 1년 유예했고, `자사고·외고 폐지`는 `우선선발권 박탈`로 한발 물러섰다. `특성화고의 현장실습 즉시 폐지`, `교장공모제`도 시작과 끝이 달랐다.

2014년부터 찬반 논란을 거쳐 마련한 초등 한자표기 정책을 올 들어 은근슬쩍 폐기한 것은 한심한 패착이다. 백년지대계인 `교육정책`을 실험실에 가둬놓고 학생과 학부모들을 실험쥐인 양 여기는 행태는 더 이상 용납돼서는 안 된다. 교육현장의 실태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검증도 안 된 새 정책을 불쑥 내놨다가 안 되면 `유예` 카드로 슬그머니 발을 빼는 식의 무책임한 태도는 근절돼야 한다.

영어교육과 관련, 교육부는 무려 세 번이나 입장을 바꿨다. 금지 발표 직후 `미확정`으로, 다시 `시행유예 검토`로 변경했다가 마지막에는 원점에서 재검토한 뒤 내년 초 다시 결정하기로 했다. 유아영어 사교육을 부추기고 교육격차가 더 벌어질 거라는 당연한 우려가 폭포처럼 쏟아졌다. 다급해진 여당까지 나서서 브레이크를 걸자 교육부가 허겁지겁 백기를 든 꼴이다.

지난해 8월엔 수능 절대평가 개편안을 여론의 반발에 밀려 미뤘다. 객관식 수능의 영향력 축소를 추구하는 `절대평가` 주장과 대학입시의 공정성 보장을 위한 `상대평가` 논리 사이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다. `자사고·외고 폐지`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일부 진보교육감들이 해당 학교들을 모두 재지정한 뒤 정부결심을 묻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교육부가 2014년부터 추진해온 `초등 한자표기 정책`을 갑자기 폐기한 것은 중대한 실책이다. 이 정책은 초등학교 5~6학년 교과서에 나오는 한자어를 일부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었다. 한국어 단어는 70%가 한자에서 온 한자어다. 그리고 한자어는 학교 단위가 올라갈수록, 전문분야일수록 그 수가 폭증한다. 자기 이름조차 한자로 못쓰고 패배(敗)를 `패북`이라고 읽는 아이들을 언제까지 방치해야 하나.

교육부의 반복되는 혼란은 대통령 공약 실천에만 매달리는 조급증에서 비롯된 것이다. 국민 모두 촉각을 곤두세우는 우리 사회의 최대 이슈인 `교육정책`은 신중하고 섬세한 접근법이 필요하다. 여론수렴을 건너뛰고 현장의 목소리를 무시한 결과물은 뒤탈이 나기 마련이다. 민감한 사안일수록 충분한 의견 수렴으로 공감대를 넓히려는 노력이 앞서야 한다.

우리 교육이 혼란에 빠진 것은 온전히 공교육 붕괴 때문이다. 교육정책은 현실을 무시하고 준비도 없이 때려잡고, 잘라내고, 폐지하는 방식으로 접근할 일이 결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