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의호<br /><br />포스텍 명예교수·DGIST 총장특보
▲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DGIST 총장특보

연초 미국 출장 중 삼성전자가 사우스캐롤라이나에 새로 짓고 있는 뉴베리 공장에 들렀다.

연구개발 제휴 가능성을 점검하기 위해 들르면서 그곳에서 근무하는 막내아이를 만났고 흥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모든 회의에 자기가 들어가서 통역이나 번역을 도와주고 있는데 미국 측 건축회사가 자기들끼리 비밀리 주고받는 소리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측이 협상이나 협력에서 상당히 유리해져서 회사가 매우 고마워 한다는 것인데, 사실 필자는 이미 그런 유사한 경험을 했었다.

90년대 환동해연구회를 일본, 중국, 러시아 등과 조직했었는데 국제회의 때 4개 국어가 난무하면서 영어를 공통언어로 지정하고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사람이 회의를 장악하는 모양새가 연출됐다. 언어 구사력이 그 국가의 이익을 가장 크게 보호하고 대변할 수 있었다.

교육부가 지난달 27일 발표한 전국 5만여 개 유치원·어린이집의 방과 후 영어 수업 금지 방침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했다고 한다. `수업 금지→금지 여부 미확정→시행 시기 미확정`으로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학부모의 강력 반발이 이어지자 금지 여부를 처음부터 다시 검토하기로 한 것이다. 교육부는 16일 “유아 방과 후 수업을 금지하면 사교육 부담과 영어 교육 격차가 늘어난다는 등 국민의 우려를 무겁게 받아들이기로 했다”면서 “다양한 국민 의견을 수렴해 유치원 방과 후 과정 운영 기준을 내년 초까지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교육부의 규제가 한국교육을 망친다는 이야기는 이제 새로운 이야기도 아니지만 도대체 왜 영어교육까지 교육부가 규제하려 드는가? 교육부는 “유치원·어린이집 영어 방과 후 수업이 지나치게 학습 위주로 운영돼 금지하겠다”고 했는데 방법에 문제가 있으면 방법을 고치면 되지 교육 자체를 금지하는 건 지금의 국제적 추세와 학부모의 열망을 너무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학부모들 사이에선 당장 “우리 아이는 노래를 통해 재미있게 영어를 배우는데, 왜 자꾸 학습이라고 하느냐. 공감이 안 된다”는 불만이 나왔다고 한다.

교육부는 “영어 방과 후 금지 정책을 재검토하겠다”면서도 “조기 영어교육을 지양해야 한다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영어는 어려서 노출이 돼야 한다.

언어감각은 보통 12세 이전에 완성된다고 한다. 모국어 발달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도 영어의 조기 노출만으로도 외국어 감각이 발달될 수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 삼성, LG, 현대와 같은 기업은 세계 어디서나 그 제품을 볼 수 있는 기업인데, 영어는 그들의 기업 운영에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영어가 국가 경쟁력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포스코 회장들은 세계철강협회 회장으로 종종 활약하는데, 늘 영어구사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곤 했다.

다양한 언어습득은 두뇌에 언어구사 장치를 만드는데 있다. 이 장치들은 병렬로 연결돼 있어야 하며, 직렬로 연결돼 있어서는 안 된다. 한국어로 생각하고 영어로 번역하려면 이미 늦다. 영어로 들으면 영어로 대답하고, 한국어로 들으면 한국어로 대답하는 두 개의 장치가 병렬로 있어야 한다.

이러한 두 개의 병렬장치 발달은 어려서 외국어에 노출되어야 가능하다는 것이 언어학의 기본이다. 세계화로 인해 기업, 교육, 문화, 경제, 외교 모든 분야에서 세계와 교류하지 않고는 생존할 수 없는 이 시점에서, 강소국을 지향하는 한국으로서는 반드시 영어에 노출이 되어야 한다. 필자가 미국대학 교수 시절 어려서 영어에 조기 노출되지 못했던 아쉬움으로 안타까워 했던 시간이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반복 되어서는 안 된다. 영어교육, 자율에 맡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