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형<br /><br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영하 37도. 숨이 그대로 얼어붙는 기온. 아무리 값나가는 방한용품이라도 모두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리는 숫자. 그것은 바로 몽골 1월 기온이다.

필자는 4년째 새해의 시작을 몽골에서 하고 있다. 5월에 있을 학생들의 몽골 해외이동수업 답사를 매년 하기 때문이다. 몽골은 최근 며칠 동안 춥다고 움츠렸던 필자의 투정을 일순간에 얼려버렸다. 몽골에서 만난 신부님의 말씀은 자체가 진리였다. “몽골은 혹한이라는 말 대신 인내(忍耐)라는 말을 씁니다. 몽골에서는 유목민도 인내하고, 동물도 인내하고, 모두가 인내합니다. 그러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입니다.” 이번 답사를 통해 몽골 초원의 언어가 `인내`라는 것을 새롭게 알았다.

답사의 중요한 점검사항 중 하나는 2017년 5월에 학생들이 심은 나무들이 극한의 영하 날씨에도 뿌리를 내리고, 사막화방지라는 학생들의 꿈을 실현해 가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몽골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려면 아무리 가까운 지역이라도 기본 편도 3시간 이상 걸린다. 올해로 3년째 몽골에서 사막화 방지 작업을 하는 3학년 학생들의 새로운 교육 프로그램 계발을 위해 답사 2일차 되던 날 몽골에서 세 번째로 큰 다르항이라는 지역을 방문했다. 그곳에는 몽골 청소년들의 꿈을 위해 대가 없이 노력하는 신부님이 계셨다. 신부님을 뵙고 여러 가지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을 듣고 답사까지 하느라 예정했던 시간보다 많이 늦어졌다. 짧은 답사 기간이지만 생명·사랑·나눔의 숲만큼은 꼭 봐야한다는 필자의 간절함에 몽골 가이드는 눈길을 헤치며 밤이 들기 시작한 사막 길을 내달려 주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현지 주민들이 필자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혹한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반가히 맞아 주시는 그 분들을 보면서 필자의 초조함은 금방 사라졌다. 현지 주민들은 찾아 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했다. 그리고 한국 학생들이 심은 나무들이 너무도 잘 자라고 있다고 했다. 허리까지 들어찬 눈에도 하늘을 얼려버린 영하의 기온에도 올곧게 뻗은 어린 나무들의 모습은 마치 한국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의 열정과 함성을 기억하고 있는 듯 했다. 뭉클함이 무엇인지를 느끼는 순간 필자는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이 떠올랐다. 희망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았다. 아무리 혹독한 추위도 학생들의 열정은 어쩌지 못했다.

그런데 숙소에서 무심코 켠 TV의 한 장면이 필자의 감동을 일순간에 날려버렸다. 다른 나라에서 듣고 보는 한국 이야기는 필자의 입에서 비속어를 저절로 나오게 했다. 그것을 다른 나라 사람들이 본다는 생각에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다. 필자가 본 화면 안에는 대통령을 중심으로 마치 좌청룡 우백호 마냥 정부 관료들이 앉아 있었다. 뉴스는 청와대 신년인사회 모습을 자막까지 띄워가며 보여줬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대한민국 정부는 참 아부가 난무하는 정부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특히 좌청룡의 3과 관련된 건배사는 정말 최악이었다, 3% 성장, 3만 달러 시대, 30년만의 올림픽 등! 과거를 모두 적폐로 몰아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저렇게 뻔뻔하게 과거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잠시 인내를 잊고 들고 있던 휴대폰을 던져버렸다. 그들의 모습은 아부와 권력에 대한 탐욕 그 자체였다.

휴대폰이 날라가는 순간 적폐보다 병폐(病弊)부터 청산되어야 한다고 생각이 번뜩 들었다. 청산되어야 할 가장 대표적인 병폐는 바로 지금 정부가 보여주는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내로남불 격의 생각과 신년회에서 보여준 아부와 뻔뻔함 등이다. 그 날 새벽 몽골에서는 한국의 개짖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