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의호<br /><br />포스텍 명예교수·DGIST 총장특보
▲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DGIST 총장특보

이제 곧 대학의 졸업식 시즌이 시작된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언제부터인가 대학 졸업식은 꽃다발 들고 사진 찍는 행사로 변질되고 있다. 심지어 행사장에 들어가지도 않고 바깥에서 사진만 찍고 가는 졸업생들도 많은 것이 현실이다.

언젠가 서울 유명 대학의 졸업식에 참석했는데 학부 졸업생들은 아예 바깥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사진만 찍고 있고 행사장엔 대학원 졸업생들만 앉아있는 진풍경을 본 적이 있다. 대학 졸업식이 아니라 대학원 졸업식이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평소 행동과 태도가 거침이 없기로 유명한 미국 대학생들의 졸업식은 질서 정연하기로 유명하다는 사실이다. 3시간을 넘어서는 졸업식에서 학생들이 질서정연히 앉아 있는 광경을 몇 번 본 적이 있다. 자유분방한 미국 젊은이들의 성격을 생각해 보면 매우 이채로운 풍경이다. 최근 포스텍이나 디지스트 같은 과학 특성화 대학의 졸업식은 미국 졸업식에 가까울 정도로 질서 정연하지만 몇 년 전 포스텍에서도 에피소드는 있었다.

졸업식이 예상 밖으로 너무 길어지면서 졸업생들이 하나 둘 자리를 이탈해 바깥에서 가족들과 사진을 찍는 모습이 연출되고 기차 시간에 맞춰 학교를 떠나기도 했던 것이다. 졸업식 자리가 듬성듬성 비는 상황이 벌어지고 급기야 단상에 참석한 중요한 귀빈 한 분이 화를 내면서 단상을 내려오는 상황도 벌어졌다. 이후 포스텍은 졸업식 시작 시간을 앞당기고 여러 가지가 개선돼 다시 질서 정연한 졸업식으로 변신해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 대학졸업식 퍼레이드를 기획하고 있는 대학이 있어서 화제가 되고 있다. 오는 2월 졸업식을 갖는 한 과학기술 특성화 대학이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학위를 받은 한 교수의 아이디어로 졸업식 퍼레이드를 기획했고 곧 실천될 단계라고 한다. 오래전부터 한국 대학에서 졸업식 퍼레이드를 하면 어떨까하는 기대를 가졌던 필자 입장에서는 매우 반가운 소식이다.

이런 졸업식 퍼레이드가 외화내빈인 한국의 대학 졸업식을 풍성하게 만들고 커뮤니티와 대학이 어울리는 잔치로 벌어지길 기대하는 마음이 가득하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호주 RMIT대학 등은 졸업식 퍼레이드로 유명하다.

졸업식이 벌어지는 날 시내 퍼레이드 풍경은 장관을 이룬다. 그 도시의 제일 중심이 되는 거리를 교통경찰 지원을 받아서 졸업생들이 당당히 걸어가는 모습과 이를 환호하는 시민들의 모습에서 대학과 시민이 하나가 되는 멋진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떤 대학들은 졸업 시즌이면 거의 아침마다 퍼레이드가 있는데 이는 졸업식을 학부마다 진행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도 모두 표정이 밝고 시민들도 함께 기뻐하고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대학 졸업이 입학하는 것보다 어려운 외국의 대학에서는 당연한 모습인 듯하다.

국내 처음 시행되는 이번 졸업식 퍼레이드는 2월이라는 추위와 `처음`이라는 수줍음과 어색함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망설이는 졸업생이나 교직원들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국내 최초라는 수식어가 어울리게 대학이 신선하게 홍보되고, 지역과 어울리는 잔치가 되는 이런 행사가 가져올 보상은 망설임을 넘어설 것이라 생각된다. 오히려 지역민들은 추위를 우려하기 보다 대학의 새로운 시도에 설레임과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앞으로 졸업생 퍼레이드가 최소한 국내 과학특성화 대학에서는 확장될 것으로 기대된다.

과학과 공학은 특히 시민과 지역사회 커뮤니티와 동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아왔기에 과학·공학도들의 거리 행진은 과학과 공학이 시민 곁으로 다가간다는 상징적인 의미도 있을 것이다.

이번 행사가 유튜브로 세계에 중계되었으면 한다. 시민들 사이로 박수를 받으며 당당히 걷게 될 졸업생들의 모습이 벌써부터 설레임 속에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