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북한의 김정은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벌인 `핵단추` 설전이 화제다. 소란의 진상은 이렇다.

북한 김정은이 신년사를 통해 평창올림픽 대표단 파견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미국을 겨냥해 “핵 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항상 놓여 있다”고 위협하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를 맞받아 “지금 로켓맨이 처음으로 남한과 이야기하기를 원하고 있는데 아마 좋은 뉴스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며 “김정은이 책상 위에 핵 버튼이 있다고 했는데 누군가가 나도 핵 버튼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김정은에게) 알려줬으면 좋겠다”고 발끈했다. 한발 더 나아가 그는 “내 핵 버튼은 훨씬 크고 더 강력하며 작동도 잘 한다”며 김정은의 `핵 단추` 발언을 폄하했다. 사실 핵보유국이자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의 대통령에게 핵단추, 아니 핵가방이 있다는 사실은 비밀아닌 비밀이다.

재미있는 것은 뉴욕타임스(NYT) 등 미 언론들이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맞대응하면서 언급한 것과 같은, 물리적인 핵단추는 “없다”고 보도했다는 사실이다. 그 대신 미국의 핵공격 절차는 단추형식이 아닌 `풋볼`이라고 불리는 서류가방 형태로 돼 있다고 밝혔다. 이 가방은 지정된 미군 장교 5명이 서로 돌아가면서 항상 대통령 지척에서 들고 다니는데, 핵발사 장치뿐만 아니라 라디오 전파를 이용한 통신장비, 전쟁계획을 담은 가이드북 한 권을 담고 있다고 했다. 북한의 핵단추는 확실히 알 수 없는 반면 트럼프의 핵단추는 `핵단추가 아닌 핵가방`으로 실존한다고 강조하는 반어법인 셈이다.

김정은과 트럼프가 서로 핵단추를 과시하지만 실제로 사용하기는 어렵다는 데 이설이 없다. 핵폭탄을 보유한 나라끼리 전쟁이 터질 경우 공멸할 수 밖에 없는 재앙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결코 눌러선 안될 핵단추를 굳이 언급하는 건 상대를 압박해 이익을 챙기기 위한 것이라 보면 된다. `칼이란 것은 뽑기 전이 두려운 법`이라 했다. 일단 빼면 끝이다. 상대방도 이판사판, 죽기살기가 되기 때문이다. 핵단추는 누구에게나 최악의 선택이 될 수 있는 칼 이상의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언제부턴가 `권력의 핵단추`가 남용되고 있다. 자유한국당 최경환 의원이 4일 국정원 특활비를 받았다는 혐의로 구속됐고, 박근혜 전 대통령도 30여 억원의 특수활동비를 전용한 혐의로 추가기소된다는 소식이다. 최 의원은 친박계 핵심실세로 이명박 정부때 산자부 장관을, 박근혜 정부에서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냈는데, 문재인 정부 들어 첫 현역의원 구속이란 불명예를 안았다. 시범 케이스란 얘기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결정 이후 지역구 활동에만 전념하며 몸을 낮춰왔지만 끝내 검찰의 구속을 피하지 못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로 탄핵된 후 검찰의 기소로 수감중인 박 전 대통령이야 특활비 혐의가 덧씌워진다 해서 또 하나의 혐의가 추가됐을 뿐 별다를 게 없다.

자유한국당은 논평을 삼간 채 일부 의원들이 “검찰도 정치보복에 의한 수사가 이뤄졌다는 의혹에 대한 멍에를 계속 안고 가야 할 것”이라며 항변하는 정도에 그쳤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뿐 아니라 이명박, 노무현 정부 등에서도 검찰이나 국회 정보위원회 등에 관행으로 전해졌던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빌미로 현역 의원을 구속한 것은 추후 정치권에서 정치보복이란 반발이 제기될 수 있다.

언론에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바라보자며 목청을 높이곤 한다. 하지만 권력의 속성은 쉬이 바뀌지 않는다. `나는 맞고, 너는 틀렸다`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않는다.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대선에서 이긴 것만으론 성에 안찬 듯하다. 꼭 전임 대통령과 그 측근들을 해코지해야 직성이 풀린다.

권력이란 이름의 핵단추를 눌러보고 싶은 욕망은 누구에게나 뿌리치기 힘든 마성으로 다가가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