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일 근

운명은 피해갈 수 없다는 것을

몸이 먼저 알아버렸기 때문일까

아니면 충효당 가는 길의 밤꽃 내음 때문일까

하회(河回)에서 안고 말았다, 내 품에 안긴 여자는

운명 앞에 침묵하고 있었다

그때 내 몸에서 들끓는 열망과 같은

비릿한 밤꽃 내음이 코끝을 스쳐 지나갔지만

나는 호흡하지 않았다, 이 순간 한 호흡을 놓쳐버리면

우리는 윤회(輪廻)의 이편과 저편으로 나눠질 수 있는 것이다

내게 사랑이란 한 몸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호흡한다는 것이다

들숨과 날숨 고르게 쉬면서

이 밤 함께 흘러가는 것이다

하회 수태극의 물길이 내 손금에

새로 새겨지는 밤이었다

시인은 밤꽃 피어 아름다운 하회마을 충효당 가는 길에서 운명적인 사랑을 안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사랑이란 한 몸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는 것이고, 함께 호흡하는 것이라는 시인의 말에 깊이 동의하고 싶은 아침이다. 들숨 날숨 고르게 쉬면서 흐르는 강물처럼 영원을 향해 함께 흘러가는 것이리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