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의호<br /><br />포스텍 명예교수·DGIST 총장특보
▲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DGIST 총장특보

또 터졌다.

안전 불감증 사고는 도처에서 크레인 붕괴, 낚싯배 침몰에 이어 이제 빌딩 대형화재에까지 이르렀다.

29명의 목숨을 앗아간 충북 제천 빌딩 화재 참사는 지금 한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사들과 더불어 결국 `국가형 맞춤 참사`이다.

불법적 관리와 대충주의가 낳은 안전 불감증이 이처럼 참혹한 결과를 가져온 것이고 이것은 한국이라는 국가가 갖고 있는 맞춤형 문제이다.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2층 여자 사우나에서는 비상구로 통하는 공간이 창고로 사용되고 있었고 비상구로 가는 입구는 목욕 바구니로 꽉찬 선반들이 가로막고 있어 탈출이 힘들었다고 한다. 결국 비상구를 찾지 못한 여성들이 정문으로 탈출하려다 계단을 타고 올라온 유독가스를 흡입하고 참변을 당했다고 한다.

비상구는 화재 발생 시 인명피해를 막는 생명 통로다. 그럼에도 비상구 입구를 창고처럼 이용한 건물주의 안전 불감증과 대충주의가 이처럼 많은 인명피해를 낳았다.

도대체 어떻게 화재 발생 1시간이 지나도록 창문 하나 깨지 못하고 구조활동을 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는가? 왜 사다리도 펴지지 않는 불량품 차량이 움직이는가? 그것도 결국 대충주의의 산물이다. 이번 화재는 46년 전 1971년 크리스마스 이브 때의 서울 대연각호텔 화재의 재판이다.

필자가 대학 신입생 시절 일어난, 200여 명이 희생된 대연각호텔 화재는 불이 복도를 타고 연소통처럼 피어오를 때 사다리도 없는 소방차가 전국 궁사들을 모아서 활을 창문에 쏘는 19세기 방식의 구조 방식으로 수많은 투숙객을 희생시켰다.

그때는 소방장비 등이 절대 부족한 시절이라고 하지만 지금 50년 가까이 지나서 똑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14년 전 마산을 휩쓴 태풍 매미 때 수십명의 사망자도 안전 불감증에서 나타난 똑같은 상황이었다.

당시 마산시나 소방당국은 경고사이렌 하나 없이 쓰나미의 공격에 무방비 상태였고 안전에 대한 기본적 준비조차 되어 있지 않았다. 필자 자신도 그 당시 보석같은 큰 딸아이를 하늘로 보냈다. 미국에서 유학시절 태어나 미국에서 자란 아이가 한국에 와서 국가형 맞춤 재해에 희생된 것이다.

세계 어디를 가도 안전지대는 없겠지만 국가형 맞춤 재해에 의해 희생된 부모와 가족은 정말 억울하고 미안한 마음에 가슴을 부여잡고 삶을 이어간다. 그 삶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아프고 처절한 삶이다.

미국이나 필리핀에는 총기사고가 있다. 아프리카에는 유행성 질병 사고가 빈번하다. 세계 곳곳에는 국가맞춤형 사고들이 있다.

미국에서 총기로 희생된 필자의 친구가 있었고, 아프리카 외교관으로 갔다가 뇌수막염에 걸려 평생 불구가 된 지인도 있다.

한국의 안전 불감증과 더불어 국가별 맞춤형 재난에 희생된 케이스이다. 그러한 나라들도 반성해야 한다.

미국과 필리핀 같은 나라는 총기사고 방지를, 아프리카는 질병 예방 방지를 강화하기 위해 온갖 힘을 쏟아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제 한국은 안전 불감증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충대충 주의는 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과거 공무원들의 부정이나 학생들의 시험부정 등등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일들에서 대충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대충주의가 오늘날 한국의 적당주의로 안전불감증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맞춤형 사고 - 안전 불감증 사고는 이제 막을 내려야 한다.

그 첫걸음이 대충주의를 없애야 한다. 제발 이제 국가 맞춤형 사고는 멈추자.

희생자의 가족과 부모를 생각할 때 이는 미루어야 할 일이 절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