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신작 시집 `풀의 사원` 출간한 김만수 시인

▲ `풀의 사원` 김만수 지음·천년의시작 펴냄 시집·9천원

아버지 쓰러진 비탈
바람의 껍질들
두꺼운 비닐 뒤집어쓰고
싸늘히 하관된 채 능선에 엎드려 있다
칸칸이 스미던 노을 방문 닫아걸고
푸른 난간마다 얹어놓던
구름 우체통도 걷어내고
송홧가루 아득히 떠가던
유월의 산자락 들길 지워내고
뜨거운 별이 파고들던
옹이진 허리께도 무참히 꺾여
차가운 문 끌어당기며
영혼의 문신들 지우고 있다
저 푸른 역장(逆葬)

-김만수 시집
`풀의 사원` 중
`소나무 무덤` 전문.

포항에서 태어나 한국작가회의와 포항문학 회원으로 활동해온 김만수 시인이 새 시집 `풀의 사원`을 들고 독자들 곁으로 돌아왔다. 이 책은 “자신의 존재뿐만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한 성찰을 통해 존재의 진정성을 찾아가는 작가”로 평가받는 김 시인의 여덟 번째 시집이다.

대동중학교 교장으로 재직 중인 김만수 시인은 문예지를 발간하고, 어린이 백일장을 기획하는 등 포항 지역의 문화운동을 이끌어온 중진 예술가 중 한 명이기도 하다.

`풀의 사원`엔 앞서 언급한 `소나무 무덤`과 같은 절창(絶唱)이 여러 편 실렸다. 시집의 해설을 쓴 경남대 김경복 교수는 “시인 김만수가 꿈꾸는 그리움의 세계는 자신의 고향이 다시 유년의 아름다웠던 한때처럼 생명의 활기와 청신함이 가득찬 상태로 되돌려지는 데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일까?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바람이 차갑던 지난 12일 대동중학교에서 김만수 시인을 만났다. 아래는 김 시인이 들려준 시와 삶에 대한 이야기다.

-등단 30년을 맞았고 여덟 번째 시집을 냈다. 어떤 심정인가?

“1987년 `실천문학`에 작품을 발표하면서 시작된 나의 시 쓰기는 느리지만 끊임없이 이어졌다. 시를 쓴다는 게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열심히 써왔던 것 같다. 첫 시집을 낼 때의 설렘이나 이번 여덟 번째 시집을 발간할 때나 마음가짐엔 변함이 없다. 가만히 세상 한쪽에 내 시집을 하나 더 얹었다는 생각을 한다.”

-교직에 있으면서 시를 쓴다는 건 장단점이 있을 것 같다. 좋았던 점과 어려웠던 점은?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아이들에게 시를 가르치며 한 편으로 내 시 공부를 했던 시간들은 참 행복했다. 어려웠던 점 보다는 보람의 시간들이 더 많았다. 학생들의 문학동아리를 만들고 본격적으로 문학 지도를 해서 졸업시켰는데, 나중에 시인도 되고 작가도 돼 좋은 문학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보는 건 가슴 벅찬 일이다.”

-시인이 가르치는 아이들은 뭔가 다를 것 같다. 교단에서 학생들에게 가장 강조했던 것은 무엇인지?

“나는 `정직과 용기`라는 덕목을 강조하며 아이들 곁에 있었다. 첫 시집에 실린 `급훈` 이라는 시가 있다. 정직과 용기라는 가치를 가르치고 싶은 신념이 녹아있는 시다. 정직하면 뭔가 손해를 보고 용기를 가지면 꺾일 수밖에 없었던 시대 상황 속에서 정직과 용기라는 가치는 시간을 뛰어넘어 우리 사회를 떠받치는 든든한 힘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것들이 미래를 열어갈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가치라고 믿었다.”

-포항에서 태어나 대부분의 시간을 포항에서 지내온 것으로 안다. 고향의 바다와 사람들은 어떤 의미인가?

“포항은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변경에 놓여있지만, 푸르른 바다와 산과 들, 강이 함께 어우러진 아름다운 도시다. 거친 파도와 싸우며, 땀 흘려 농사짓고, 열심히 생을 꾸려가는 강단지고 어기찬 사람들의 삶이 이뤄지는 곳이기에 정겹고 생명력이 넘치는 공간이다.”

-이번 시집엔 구체적인 지명(地名)이 여럿 등장한다. 어떤 차원에서 사용한 것인지?

“그 각각의 지명이 구체적인 삶이 다양하게 이뤄지는 곳임을 말하고 싶었다. 역사의 향기가 스며 흐르는 곳이기도 하고, 푸른 생명력이 일렁이는 곳이기도 하며, 최선을 다해 생업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진실한 공간이기도 하다. 내 시는 그런 구체적 공간에서 많은 모티브를 얻었다. 사람들의 정이 흐르는 그 공간에선 아름다운 연대가 이뤄지기도 한다.”

-이번 시집 `풀의 사원`은 지난 시집들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지난 시집들은 우리네 삶의 다양한 이야기, 곧 외적 관심으로 언어의 집을 지었다고 한다면 이번 시집은 좀 특별한 분위기를 품고 있다. 몇 해 전 뜻하지 않은 일로 마음의 상처가 깊었던 적이 있다. 쉬 사라지지 않는 아픔으로 문학에 많은 회의를 느꼈고 시 쓰는 일을 접을까도 생각했던 게 사실이다. 그때의 트라우마(trauma)가 이번 시집에 많이 반영돼 있다. 스스로를 위로하고 순정한 나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담겼다고 말하고 싶다.”

-`풀의 사원`을 통해 독자들에게 어떤 이야기와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는가?

“자연, 우주라는 광활하고 무한한 시 공간의 영역 속에는 아주 미미하고 어떤 주목도 받지 못하는 풀꽃들이 많다. 그들의 존재가 보잘것없이 보일 수도 있지만, 한 번 더 생각해보면 그것들 또한 나름의 가치가 있다. 우리의 관심과 시선에서 벗어나 있거나 하찮은 것으로 취급받는 것들이지만, 그들 나름의 가치가 있기에 마땅히 존중돼야 한다는 것을 노래하려 했다.”
 

▲ “시는 우주와 세상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빛이 얼개를 이룬 것”이라 말하는 김만수 시인.
▲ “시는 우주와 세상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빛이 얼개를 이룬 것”이라 말하는 김만수 시인.

-내년이 정년이다. 시인과 교사로 살아온 삶은 어떠했는지. 후회는 없는가?

“젊은 교사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37년이 지났다. 쏜살같이 가버린 세월이 느껴진다. 아이들 가르치는 일도, 시 쓰기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은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치열한 현실인식과 내 시가 새로운 지평을 열어 가는데 소극적이었던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순수한 열정과 단호한 결행을 신념으로 삼았던 청춘의 시간이 그립다.”

-30년 이상 시를 써왔다. 시는 무엇이고, 시인이란 어떤 존재인가?

“시는 우주와 세상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빛이 얼개를 이룬 것이라 믿는다. 시인은 그 시대의 가장 첨예한 안테나 같은 존재여야 한다. 사람과 사물에 끝없이 말을 걸고 시비를 거는 존재가 시인이 아닐까. 보이지 않는 곳까지 깊이 찌르고, 뜨겁고도 차갑게 파고드는 뿔이나 더듬이를 가진 존재가 시인이라 믿어왔다.”

-앞으로의 계획은?

“시를 쓰며 건너온 시간들이 깊다. 행복한 순간들이었다. 시를 생산하는 일은 수월치 않지만 해볼 만한 일이라 생각한다. 사람과 자연, 사물을 직관하고 그것들에 말을 걸고, 다양하게 상상의 영역을 확장해 나간다면 좋은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다. 언제나 시 쓰는 일에 푸르게 깨어 있으려 한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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