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창원<br /><br />수필가
▲ 박창원 수필가

지난 11월 15일에 발생한 포항지진은 사람들의 일상을 바꿔놓았다. 규모 5.4의 본진 이후 수십 차례나 이어진 여진 공포 속에 시민들은 이제 지진을 남의 얘기가 아닌 우리 앞에 다가온 현실로 받아들이는 한편 생활의 변화를 통해 점차 적응해 나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벽에 걸린 액자를 방바닥에 내려놓거나 여차하면 피난할 수 있도록 지하주차장 대신 지상이나 도로변에 주차하는 일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비상 배낭을 싼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일시적이긴 하겠지만 도시 지역에서는 고층 아파트보다 저층 아파트나 주택을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고층이 지진 때 흔들림이 심한 것도 문제지만 비상시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여 대피하다 보니 겁도 나고 힘이 들어서다.

지진으로 기운 아파트, 기둥이 부러진 필로티 건물, 외장용 벽돌이 와르르 떨어진 대학 건물을 보면서 건축에서 내진설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는 계기가 됐다. 아마 새로 집을 짓는 사람들은 내진설계를 최우선으로 내세울 것이며, 콘크리트 외벽에 장식용 외장재를 함부로 붙이지 않을 것이다.

진앙지에서 10Km 정도 떨어져 큰 피해를 입지 않은 필자의 집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왔다. 그 날 이후 우리 가족은 빈방의 등을 하나 켜고, 방문을 조금 열어놓고 잔다. 야간에 지진이 났을 때 조명이 필요해서다. 거실에 책장이 셋 있는데, 이것들을 나사로 서로 결박했다. 책장이 넘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이와 함께 안정성을 보강하는 차원에서 책장 맨 윗칸을 비웠다. 또 책장에는 책 외에 각종 상패와 장식품도 진열해 뒀으나 이것들도 이번에 맨 아래쪽으로 내렸다. 책장 외에도 진동에 넘어지거나 떨어질 만한 물건은 죄다 안전한 곳으로 내려놓았다. 골목 담장 옆에 바짝 붙여 주차하던 습관도 바꿨다. 담장이 무너지면 차가 부서질 수 있기에 담장에서 가급적 멀리 떨어진 곳에 주차한다.

이웃나라에 큰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걸 보고서 우리도 지진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행동은 여태 바뀌지 않았다. 인간은 언제나 눈앞의 큰 위기를 당하고서야 비로소 패러다임을 바꾸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담배나 술에 중독돼 있는 사람은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고서야 담배도 끊고, 술도 끊는다. 공동체 사회도 마찬가지다. 성수대교 붕괴사고를 겪고서야 우리 사회는 모든 교각의 안전 유무를 점검하는 시스템을 갖췄고, 대구 지하철 화재사고를 겪고서야 지하철 안전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했다. 메르스 사태를 경험하고서야 병원 응급실 운영체계를 바꿨고, 뼈아픈 세월호 사태를 겪고서야 대형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국가적 시스템이 마련됐다.

세계인들이 칭송하는 일본의 지진방재시스템은 하루아침에 갖춰진 게 아니다. 관동대지진(1923, 규모 7.9), 한신대지진(1995, 규모 7.2), 동일본대지진(2011, 규모 9.0) 같은 지진을 수없이 겪으면서 하나씩 준비하고 보완한 장치다. 작년 경주 지진과 이번 포항 지진은 분명히 우리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고, 많은 피해를 안겨줬다. 그래도 단 한 명의 사망자가 없었다는 점에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본다. 만약 이번 지진이 6이나 7 정도로 왔다면, 그리고 대낮이 아닌 밤에 들이닥쳤다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할 땐 아찔해진다.

그러기에 경주의 5.8이나 포항의 5.4는 우리에게 있어 더 큰 지진에 대비하는 예방접종과 같은 것이다. 아직은 이재민들을 돌봐야 하고, 복구에 땀을 흘려야 할 때이지만, 이번 지진으로 우리 사회가 돈으로 살 수 없는, 그 어떤 교육으로도 얻을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을 했다는 점에서 분명히 긍정적인 면도 있다고 본다. 머리로 배운 지진이 아닌,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낀 지진이었기에 국민들에겐 상당한 학습효과가 있었다.

이 경험을 지진과 같은 대형 재난에 대비하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드는 계기로 삼는다면 이번 지진은 우리에게 긍정적 에너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