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창구<br /><br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역사학자 토인비(Arnold J. Toynbee)는 `인류의 역사는 도전(挑戰)과 응전(應戰)의 역사이며, 도전에 효과적으로 응전하는 문명은 살아남지만 그렇지 못한 문명은 소멸된다`고 했다.

우리가 임진왜란의 참화(慘禍)를 겪었으면서도 또 다시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것은 역사의 교훈을 망각하고 급변하는 국제정치적 도전에 제대로 응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나라 안팎으로 커다란 도전에 직면해 있다. 밖으로는 미국과 중국이 한반도를 중심으로 동아시아 패권경쟁을 벌이고 있고, 북한은 핵무기로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으며, 일본은 북핵을 명분으로 군사대국화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

또한 안으로는 대통령 탄핵 이후 새 정부의 출범에도 불구하고 적폐청산을 둘러싸고 정치권은 물론이고 국민적 갈등이 계속되고 있는데, 탄핵정국에서의 `촛불`과 `태극기`의 대립이 지금은 `적폐청산`과 `정치보복`으로 대체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동서고금의 역사가 가르쳐주는 국가멸망의 교훈은 `외침이 있기 이전에 이미 내부 붕괴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이다.

구한말 수구파와 개화파, 친러·친중·친일파의 대립은 결국 일제의 지배를 자초하였고, 해방 후 분단된 한국은 수많은 정파의 난립과 좌우의 이념대립 속에서 정부가 수립되었으나 2년도 체 되지 않아서 북한의 남침을 초래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비극을 겪었으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갈등과 대립으로 날을 새우고 있다.

대통령 탄핵으로 집권한 새 정부는 `적폐를 청산하는 중`이라고 하는데, 보수야당은 `정치보복을 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반드시 성공해야 할 부정부패의 척결이 진영논리에 묻혀서 그 의도를 의심받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보수 또는 진보의 프레임에 갇혀있는 `외눈박이 언론들`까지 가세하여 일반 국민들의 정치적·이념적·지역적 편견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갈등과 대립을 누가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 대통령의 국민통합에 대한 의지와 실천적 노력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끝나야 한다`고 했고, 최근 김영삼 전 대통령 2주기 추도식에서는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게 하는 힘은 국민의 화합과 통합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대통령으로서 너무나 당연하고도 올바른 인식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그러한 인식을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역대 대통령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국민화합과 통합을 강조했는데,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민대통합위원회`까지 설치하였으나 결과는 오히려 분열과 대립을 심화시켰다. 그것은 대통령 자신이 진영논리에 갇혀서 말과 행동이 일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정한 통합의 지도자는 `듣고 싶은 말`보다는 `듣기 싫은 말`에 귀를 더욱 기울이고, 말보다는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이다. 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말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약속이 잘 지켜지고 있다면 야당이 `국회를 무시한다`고 흥분하지는 않을 것이다.

말로는 `협치(協治)`를 내세우면서도 행동은 `마이웨이(my way)`를 고집한다면 민주정치의 대원칙인 대화와 타협은 불가능하다.

물론 대통령은 야당의 부당한 요구와 비협조를 탓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협치를 통해서 적폐를 청산하고 국민통합을 이루려면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하는 쪽은 권력을 가진 정부여당이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에게 `갑질`하는 폐단은 비판하면서도 `큰 권력을 가진 대통령`이 `작은 권력을 가진 야당` 때문에 협치가 안 된다고 한다면 설득력이 있겠는가. 강자(强者)가 솔선수범(率先垂範)해야 한다는`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정신이 요구되는 것은 정치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