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명 인

어떤 벌레가 어머니의 회로를 갉아먹는지

깜박깜박 기억이 헛발 디딜 때가 잦다

어머니는 지금 망각이라는 골목에 접어든 것이다

번지수를 이어놓아도

엉뚱한 곳에서 살다 오신 듯한 생이 뒤죽박죽이다

밤낮이 예 있어도 분간할 수 없으니

문득 얕은 꿈에서 깨어난 내 잠

더는 깊어지지 않겠다

이리저리 뒤척거릴수록 의식만 또렷해져

나밖에 없는 방 안에서 무언가 뚝 떨어지고

누군가 건넌방 문을 여닫는다, 환청인가?

그리고 보면 나도 어느새 후생과 사귈 나이

필자는 오래 전 김명인 시인의 어머님을 뵌 적이 있다. 울진군 직산이라는 바다마을의 시인의 옛집에서다. 이 시에서 시인은 늙은 어머니의 시간과 기억의 문제를 얘기하면서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음을 본다. 어머니의 기억의 혼란과 망각의 상태는 연로한 어르신들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한 현상이다. 예순을 넘긴 시인에게도 그런 기억의 혼란 혹은 망각의 시간들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담담히 그런 시간들을 예감하며 안타까운 눈으로 노모를 바라보는 시인의 눈이 따스하기 그지없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