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평창 롱패딩 열풍이 불고 있다. 지난 22일 오전 6시30분, 서울 롯데백화점 잠실점에서는 개장시간이 한참 남은 이른 시간부터 1천여 명의 인파가 몰리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롯데백화점이 화제의 평창 롱패딩을 이날부터 판매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잠실점이 준비한 패딩은 1천장이었지만 당일 새벽 1시30분에 대기 인원이 500명을 넘어섰고, 오전 6시에는 이미 1천명 이상으로 불어났다. 오전 10시30분 백화점이 문을 여는 시간에는 이미 매진이 된 셈이다. 평창 롱패딩을 판매한 영등포점, 김포공항점, 경기도 안양평촌점 등 나머지 3곳에서도 사정은 비슷했다. 모두 백화점이 문을 열기도 전에 물량보다 많은 인원이 줄을 서 번호표 배부를 마감해야 했다. 지난 18일 800장이 개점 15분 만에 품절된 데 이은 `초고속 완판`이었다. 원래 운동선수와 감독이 경기장 벤치에서 착용하는 `벤치파카`인 롱패딩은 지난해 겨울 연예인들이 즐겨 입으면서 유행을 타기 시작했다. 중·고생과 트렌드에 민감한 20·30대가 열풍을 이끌고 있다. 중·고생 사이에서는 `요즘 짧은 패딩 입으면 아재`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평창 롱패딩이 오프라인은 물론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며 전 국민의 관심상품으로 등극한 것은 무슨 이유일까. 유통전문가들은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좋은 유행 아이템이기 때문이란 분석을 내놨다. 구스 다운(거위 충전재) 소재인 이 제품의 한 벌 가격은 14만9천원이다. 품질이나 성능은 기존 패션 브랜드 못지않지만 가격이 절반이다. 가성비가 좋다는 평가가 나올 만하다. 하지만 가성비 하나 만으로 추운 겨울 밤을 새우며 평창 롱패딩 구매 경쟁에 나선 소비심리를 완전히 설명하기는 어렵다. 수출·증시 등 경제 지표는 그리 나쁘지 않지만 롱패딩을 즐겨 입는 청소년과 학생들의 취업이나 소득 상황 등은 그리 좋아지지 않는 사회적 환경이 열풍을 부추겼으리라는 분석에도 힘이 실린다. 일부에서는 지난 2011~2012년 전국의 중고생들을 중심으로 불어닥친 `노스페이스 패딩 열풍`에 빗대 `등골 브레이커의 재림`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사실과 다르다. 당시 노스페이스 패딩은 가격이 40~50만원으로 비싸서 부모들이 사주기엔 부담스러운 가격대였으나 자녀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지갑을 열었다. 이번에는 성능 대비 가격이 착하니 비교 불가다.

가성비 좋은 제품은 어디서나 인기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바로 맛집으로 소문난 집 음식들이다. 대구에서 고등학교까지 학창시절을 보낸 필자가 서울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 가장 인상적으로 느꼈던 일 중에 한 가지가 바로 식당 앞에 줄을 서서 먹는 풍경이었다. 대구에서는 아무리 맛집으로 소문난 집이라 해도 사람이 붐비는 정도이지 자리가 없어서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먹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는 아무리 맛있는 집이라 해도 한 끼 식사하는 데 줄 서서 먹으려 하지 않는 대구사람들의 기질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넘쳐나는 서울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어디건 음식이 싸고 맛있다는 소문이 나면 으레껏 줄을 서야 했다. 점심시간과 식당 좌석은 한정돼 있고, 사람은 한꺼번에 몰리니 필연적인 결과다. 지금도 여의도 국회의사당 근처나 청와대 인근 삼청동 식당가에서는 점심시간을 전후해 식당 앞에 줄을 서있는 풍경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럼, `우리 사회에서 가성비가 가장 나쁜 분야는 어딜까요?`라고, 한번 물어보자. 아마 꽤 많은 국민들이 `정치판`이란 답을 내놓을 듯 싶다. 모든 국민들이 다함께 잘 살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공약을 걸고 당선된 정치인들은 우리 국민들의 혈세를 잘 배분해 모든 국민들을 잘 살게 할 책무가 있다. 이를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할 그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많은 국민들이 백화점이 아니라 우리 정치 앞에 줄을 서는,`가성비의 마법`은 언제쯤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