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은 영

할 일이 지천이다

부르지도 않았는데

내 방 창을 성큼 넘어 들어서는 가을볕에

내 마음 말리기

할머니가 내다 놓은 새빨간 고추 사이에

슬며시 던져 놓기

마음을 서두르게 하는 갈바람에

치맛자락에 묻혀 두었던 미련 뜯어 내

날려 버리기

처음 낙엽 떨구는 길에서

가을볕에 물든 붉은 사과 한입 베어 물고

가을 한가운데로 걷기

금방이라도

차갑게 웃어 버릴 것 같은 따가움에

괜시리 쑥스러워 아직도 머뭇거리고 있다

청명 하늘 아래 투명하고 깨끗한 가을이 다가와 지겹고 견디기 어려웠던 폭염의 시간들을 몰아내고 있다. 가을은 선선한 바람을 몰고오는 것이다. 시인은 그 바람에 살면서 묻어두었던 미련도 날려 보내고 붉은 사과 한입 베어 물고 가을을 걷고 싶다고 고백하고 있다. 갑갑하고 힘겨웠던 시간들을 날려 보내고 시원하고 소담스러운 결실의 시간들 속으로 걸어가고 싶어하고 있다. 가을을 맞는 우리의 마음을 읽어내는 시안을 본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