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형<br /><br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학년말은 학년말인 모양이다. 얼마 전까지 긴급 딱지가 붙은 국회의원들의 국정감사 요구 자료가 공문 함에 넘쳤다. 보고 날짜가 다가오면 독촉 공문까지 보내는 친절한 공무원들의 노고를 생각하면서 `국회의원들은 평소에는 무엇을 할까`라는 생각에 자료 만들기를 몇 번이나 멈추었다. 그리고 뉴스를 보면서 나라 일하는 사람들이 바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치워진 캐비닛도 찾아야 하고, 유통기한이 한창 지난 지지난 정부의 쓰레기통도 뒤져야 하니까 말이다. 과연 무엇을, 또 누구를 위한 국감인지 당리당략에 빠져 헤어나질 못하는 그들을 보면서 국감자료를 준비하느라 고생한 사람들만 안쓰러워졌다.

국감 공문이 비워진 자리에 이젠 교육유공자 표창과 관련된 공문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 공문들은 필자에게 지금이 학년말이라고 교육계의 시간을 알려주었다. 상(賞) 잔치라고 할 만큼 표창이 풍성한 학년말이다. 표창 내용을 보면서 교육 분야가 이렇게 많은지 처음 알았다. 그중 참 재밌는 표창 이름이 있다. `공교육 정상화 유공자 표창` 세부 표창 계획에는 추진 목적이 두 가지 있는데, 이 또한 재미있다. 내용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사교육 경감을 위해 적극적으로 업무를 수행한 유공자를 발굴 표창해 업무 관계자의 사기 진작 도모, 정상적 교육과정 운영, 선행교육 유발 관행 근절 등 공교육 정상화에 기여한 자를 발굴, 자긍심 고취 및 공교육 활성화 도모.”

이 공문을 보면서 이 나라 교육은 `사교육과 공교육`으로 나뉘어져 있음을 확인했다. 대한민국의 사교육은 이미 공교육을 넘어선지 오래다. 자칫 이 공문만 보면 공교육을 망친 것이 사교육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것은 큰 오해다. 학생들을 사교육으로 내몬 것이 누구인지를 우리는 분명 알아야 한다. 왜 학생들이 사교육을 받을 수밖에 없는지를 굳이 말하지도 않아도 다들 알 것이다. 그것은 교육수요자들이 공교육에서 만족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공교육에 있는 사람으로서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이 제 얼굴에 침 뱉는 격 밖에 안되지만 과연 우리 학생들 중에서 학교 교육에 만족하는 학생들이 얼마나 될까. 우리나라 교육계에서 교실 붕괴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부는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과 같은 대책을 내놓고는 있지만 무너진 공교육을 재건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왜냐하면 해결의 출발점이 틀렸기 때문이다. 책임 떠넘기기의 달인들이 모인 정부는 절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법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정부는 지금의 공교육 붕괴가 사교육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큰 교훈은 “한 번 떠난 고기는 돌아오지 않는다”이다.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은 그대로인데 이름만 달라졌다고 고기들은 절대 돌아오지 않는다. 공교육에 대한 불신은 최고조에 달했다. 다시 말하지만 그 원인은 절대 사교육에 있지 않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급변하는 교육정책, 그리고 전 정부의 모든 것을 부정해 버리는 정부의 태도를 보면서 불안감을 느끼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성적 지상주의를 부추긴 것은 분명 학교 선생들이다. 필자 또한 학생들에게 4대문 안에만 들어가라고 다그쳤다. 그곳이 학생들을 죽이는 사(死)대문인지도 모르고. 올해도 어김없이 그 사(死)대문 안에 들어가기 위해 50만명이 넘는 학생들이 수능을 친다. 수능 비극이 올해는 제발 들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분명한 것은 대학이 서열화 되어 있는 상황에서 아무리 좋은 교육 제도를 가지고 온다고 해도 중·고등학교 교육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감이 단풍보다 더 고운 늦가을 표창을 받으실 선생들께 미리 축하드리고, 그에 앞서 대학 서열화의 희생양인 수험생들에게 사죄의 말씀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