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정혜숙
초록지붕 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은 다락방이다. 우리 집 다락방은 여느 집보다 큰 편이었다. 부엌이나 자투리 공간에 잡동사니를 넣어두는 창고형 다락방이 아닌 건물 전체평수를 안고 있어 이층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굳이 이층이라 하지 않고 다락방이라고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초등학교 3학년인 내 키에 꼭 끼는 높이가 그것이다.

초록지붕 집으로 이사 가던 날, 그 날을 잊을 수 없다. 비닐커버를 뒤집어쓰기는 했지만 푹신한 소파가 마루에 놓이고, 뒤따라 안방에 의기양양하게 들어선 14인치 컬러텔레비전하며, 고무통과 연결된 연탄보일러온수기, 아직 봉우리가 얇은 아치형 줄장미와 뽀얀 돌다리 현관, 많은 손님이 올 때를 대비해 황토부뚜막에 고정된 가마솥까지…. 열 살 내 눈에 낙원이 따로 없을 정도로 새집 구석구석 마음에 들었다.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올망졸망 모여 있던 예전 집과는 다르게 초록지붕 집은 논과 과수원이 이웃이다.

비 오는 날, 다락방은 다섯 형제들에게는 인기만점이다. 마당에 심겨진 잔파로 부친 파찌짐(‘파전’의 포항사투리)을 젓가락싸움하며 먹는 재미 또한 솔솔했다. 파전으로 배가 든든해지면 첫째부터 다섯째 막내까지 풀내나는 갈대자리에 누워서 보는 야구만화는 어찌나 재미있었던지…. 아버지가 오신 낌새도 못 알아차릴 정도였다. 몽땅 아버지께 압수당한 만화책을 되돌려 받기위해 우리들은 한 달 내내 돼지우리청소를 감당해야 했다.

다락방에는 네모난 창이 두 개 있다. 기다란 못이 흉물스럽게 문을 여닫을 때 보이는 게 흠이기는 했어도 유일하게 별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칠년 전 독일에 갔을 때, 가정식호텔에서 다락방을 만났다. 독일식 다락방은 천장이 높은 방안에 계단으로 올라가는, 방안에 있는 다락방이다. 옛 기억을 떠올려 나는 한방을 쓰는 동료에게 다락방을 내가 쓰겠다고 했다. 그녀는 선선히 내게 다락방을 양보하면서 ‘아마도 오래 못 있을 거라’며

아래침대에 잠자리를 챙겨두라고 일러주었다. 먼 곳에서 맞는 밤이라 이래저래 잠은 오질 않고 둥근 천장에 온통 별은 쏟아지고…. 내 마음 갈 곳을 잃고 헤맸다. 그러다 어떻게 잠이 들었나싶다.

“우다다다다…” 속사포소리가 귓전으로 들려왔다. 유난스레 비가 자주 오는 독일 밤은 시끄럽게 첫날밤을 안겨주었다.

다락방에는 지금당장 쓰지 않는 물건들과 아이들의 장난감뿐이 아닌 많은 식구들이 숨쉬고 있다.

나랑 같이 ‘뾰족지붕 다락방’에 살던 '빨강머리 앤', '비밀의 화원'의 녹슨 비밀열쇠, 가슴 찡한 '안네의 일기', 하늘을 날고 싶은 꿈을 심어준 '어린왕자'와 '갈매기의 꿈'…. 열손가락으로 다 헬 수 없는 꿈들이 늘 함께 있어주었다.

청승맞다며 부모님께 자주 꾸지람을 들었던 계집아이 적, 나는 다섯 형제 중에서 다락방에 제일로 오래 박혀있었다. 엄마젖 덜 떨어진 아이처럼 그곳에서 안식을 느꼈다. 어린 나를 버리고 간 할머니의 죽음과 고양이 세 마리, 강아지 다섯 마리의 죽음도 나는 그곳에서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었다.

다락방은 내가 갈 수 있는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이기도 했다.

"비야 비야오너라/쫘악쫙 내려라/호박잎을 따다가/우산을 삼고/개굴개굴 개굴아/놀러오너라/ 호박잎을 따다가/우산을 삼고/별이 지면/ 꿈도 지고/ 슬픔만 남아요/ 창가에 지는 별들의 미소/ 잊을 수가 없어요/ 저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초등학생에서 갈래머리 여고생이 될 때까지 허리를 구부려야 겨우 들어설 수 있었던 다락방에서 나는 문학소녀로 클 수 있었다. 큰 창을 열어도 별을 보기 힘든 밤이다. 흙벽에 몸을 끼운 영창으로 뒷동산 아카시아향기가 놀러오는 그런 집을 짓고 싶다. 물론 다락방도 함께.

    윤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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