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칼럼
나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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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7.11.09   게재일 2017.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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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병래<br />수필가·시조시인  
▲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실제로 가능할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상상을 해본다. 일란성 쌍둥이로 태어난 두 아이 중 한 아이는 정상적인 가정에서 양육을 하고, 다른 아이는 공기와 물과 영양을 제외한 어떤 정보도 차단된 인큐베이터 같은 곳에서 길러진다면 어떻게 될까? 그 둘을 30년쯤 후에 나란히 놓고 본다면 모습은 비슷하게 닮았을지 모르지만 전자는 정상적인 청년인데 비해, 후자는 소위 자아(自我)라는 것이 전혀 형성되지 않은 완전한 백치상태의 식물인간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나 자신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그 자아라는 것이 사실은 처음부터 그렇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입수하게 된 모든 정보의 총화라고 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물론 그 정보들에 반응하는 기질적인 성향은 각자가 다르게 타고났다고 해야겠지만 황당한 소리로 들릴 수도 있는 이 예화가 의미하는 것은 그러나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다. 인간의 이성이나 사고체계라는 것이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어떤 절대적인 기능이 아니라는 것이다.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우리가 끊임없이 자신에 대해서, 우리의 사고방식이나 신념에 대해서, 의심하고 반성하고 성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은, 인간이란 얼마든지 잘못된 정보의 입수에 따라서 그릇된 인식이나 신념을 가질 수가 있는 것이며 그로 인해 개인적인 불행은 물론 엄청난 역사적 재앙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를 신봉하는 서구인들에 의해 마야문명과 잉카문명이 처참하게 파괴되고 말살된 것이나, 히틀러의 나치즘이 2차대전을 일으키고 수많은 유대인들을 학살한 것이나,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에 따라 수천만의 인명을 앗아간 피의 숙청이 자행된 것 모두가 인간의 그릇된 생각이나 신념이 낳은 결과인 것이다.

그런 역사적인 사건은 아닐지라도 우리들 개개인의 삶에서 잘못 형성된 자아나 가치관에 의해서 저질러지는 과오나 어리석은 행동은 얼마든지 있다. 특히 빈익빈 부익부가 극단화 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상대적 빈곤이나 박탈감으로 괴로워하고 좌절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많이 차지하고 크게 이룬 사람들의 삶은 그만큼 가치 있고 행복한 것이지만, 못 가지고 이룬 것이 없는 사람들은 저열하고 불행할 뿐이라는 고정관념이 우리의 삶과 생명을 쉽사리 파괴하기까지 한다.

사업에 실패했다고, 시험에 낙방했다고, 애인에게 배신당했다고, 가진 것이 너무 없다고 좌절하고 실의에 빠져 자포자기하고 싶을 때, 우리는 조용히 자문해 봐야한다. 나는 과연 누구인가, 나를 이토록 괴롭고 절망스럽게 하는 이 생각들은 도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지금 이 사회에 팽배해 있는 이 가치관이나 통념들이 과연 나의 생명과 바꿀 만큼 절대적이고 올바른 것인가.

나는 과연 누구인가? 이 광대무변한 우주 속에서 나의 존재란 먼지의 먼지의 먼지에 불과한 것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 지구상에 맨 처음 생명체가 등장한 이래로 수십억 년을 줄기차게 이어져온 것이 바로 나란 존재가 아닌가. 수억 개의 정자 중 선택된 하나라는, 로또복권을 수백만 번이나 연달아 당첨이 된 것과 같은 확률에다 온 우주를 통털어 오직 하나뿐인 기적의 산물이 바로 내가 아닌가.

나란 결코 하찮고 무의미한 존재가 아니다. 인간들이 자의로 만들어낸 그릇된 관념의 잣대로는 결코 나를 잴 수가 없다. 비록 돈이나 명예나 지위를 가진 것이 없고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처지라 할지라도, 그것 때문에 비관하거나 절망하기에는 나는 너무나 엄청나고 존귀한 존재인 것이다. 인간사회가 만들어낸 그 모든 기준이나 가치관도 내 마음 먹기에 따라서는 한낱 초개와 같은 것일 수가 있다는 얘기다. 어찌 나뿐이랴. 오늘 이 세상에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가 수십억 년의 계보를 가진 존재들이다. 그러니 풀 한 포기 벌레 한 마리인들 비천하고 하찮은 존재라 할 수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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