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종철
바야흐로 봄이다.

4월과 5월의 일요일은 여기저기에서 날아오는 청첩장으로 하루가 바쁠 지경이다. 지난 일요일에도 집안 결혼식이 있었다. 아내는 일주일전부터 부산을 떨었는데, 실은 신랑 측에 친모가 안 계시니, 혼수함을 챙겨야 할 안어른이 필요한지라, 그리하였던 모양이다.

보통 결혼을 앞둔 전야제로서, 지방마다 가문마다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신부, 신랑집에서는 혼수(婚需)와 혼서지(婚書紙) 및 물목(物目)을 넣은 혼수함을 서로 보낸다. 이를 납폐, 봉채(封采) 또는 봉치라고 하는데, 봉치란 좁은 의미로 함에 넣어 보내는 예물만을 의미하는 경우도 있다. 결혼이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사랑이 결합되는 것을 의미하지만, 우리는 예로부터 한 사람으로서가 아닌 가문과 가문의 만남이요, 결혼은 집안 잔치를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므로 혼수함을 받거나 보내는 날은 양가의 부모형제들이 모두 모여 화목을 다지고 안부를 알 수 있는 축제일이다. 보통 물목을 보면 신랑집의 가계(家系)를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신랑측과 연관된 모든 친척들에게 신부가 모두 예물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예전에 나도 결혼을 앞둔 친구집에 함을 지고 간 적이 있다.

함진 애비가 되어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함 사세요!” 고함을 지르면서, 신부집 앞에 당도하니 그 대접이 참으로 융숭하였다. 양가의 결합만이 아니라, 양가의 친구들도 한 자리에 모여 축제를 벌이는 셈이다. 동시에 집안 예의범절을 알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구경만 해도 참 재미있고 신나는 전야제인 것이다. 요즈음은 전통풍속을 지키려는 보수파(부모측)와 간단하게 예식을 끝내려는 진보파(자식)간에 의견대립이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자식은 예식이 끝나자마자 바로 신혼여행을 가 버리고, 그 빈 공간에 부모와 인척만이 남아서 먼 젊은 날의 이야기를 나누며,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꽃도 피우며, 술잔을 나누면서 축하도 하고 위로도 하는 것이다.

부모와 자식간의 의견 대립에서 누가 이기느냐 하는 것은 시간 문제이다. 거의 진보파인 자식의 승리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겼다고 해서 그대로 끝나지는 않는다. 그 후유증으로 새 식구가 들어온 집안은 어수선하기 마련이니까. 그러니 부모 자식, 양세력간의 투쟁이 아닌 화합이 필요하다. 살림이 어려우면 간소하게나마 예의를 갖추면 될 터인데, 그 실정을 모르고 무조건 생략하려고만 한다거나, 살림이 넉넉하다고 하여 온갖 예물을 다 갖추는 것도 눈총을 받을 수 있다.

형편에 맞게, 세대간의 대화를 통하여, 양가의 예의범절을 지키면서, 아름답고 축복 받는 축제의 장을 열어야 하지 않겠는가? 한마디 거든다면, 희망사항이긴 하지만, 물목에 첨부하고 싶은 게 있다.

신랑, 신부를 비롯하여 양가 부모의 건강진단서를 포함시키면 어떨까? 혼수함에 든 음식과 예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신부, 신랑의 건강 아니겠는가? 부모로써 자식을 건강하게 키웠으니 이제부터는 너희 둘이 더 건강하게 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정직한 시민으로 살아가라는 당부인 셈이니, 이보다 더 좋은 혼수함이 어디 있을까? 아니면, 자식에게 이러한 질병이 있으니, 앞으로 조심해서 살아야한다는 부모의 애타는 심정이 들어 있는 셈이니 또한 의미 있는 일이지 않겠는가? 세대간에 반목하지 말고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이 바로 건강한 신체요, 건강한 정신이기 때문이다.

결혼은 조화를 위한 축제의 장이요, 혼수는 축제에 필요한 준비인 셈이니, 건강이야말로 진정 새식구를 맞이하는 데 필요한 물목 아닐까?

    윤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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