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살로메
온통 봄빛이다. 화단 곳곳엔 냉이, 꽃다지, 씀바귀 등이 앞다퉈 고개를 내민다.

며칠 꽃망울을 뒤채던 벚꽃도 어느 새 아파트 단지를 뒤덮었다. 한데 이 환장할 것 같은 봄날은 짧기만 하다.

짧아서 아쉬운 봄이 오면 내겐 항상 떠오르는 얼굴 하나가 있다.

젊었을 때부터 잡다한 병을 얻어 휴가를 내듯 자리에 누우셨던 아버지는 매사에 예민했다. 한편으로는 어린아이처럼 귀가 얇고, 눈물이 많으신 분이었다. 막내였던 나는 늙고, 병약하고, 일관성 없는 아버지의 성정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이런 아버지와 미묘한 심리전을 겪느라, 나는 또래들보다 빨리 크는 법을 배워버렸다.

아버지와 가장 갈등이 심했던 때는 학교를 졸업한 뒤였다. 아버지는 내가 당장이라도 번듯한 직장을 얻고, 그럴듯한 신랑감을 데리고 와 당신의 무거운 짐을 덜어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당신의 순진한 기대를 저버린 나의 신분은 불안하기 짝이 없는 과외교사에 지나지 않았다. 희망 없는 청춘의 나날은 쓸쓸하기만 했다.

그 힘든 시간을 조금이나마 덜게 해 준 것이 음악과 커피와 글쓰기였다. 늦게 일어나 밥은 먹는 둥 마는 둥, 골방에 처박혀 음악을 듣다가 지루하면 낮잠을 잤고, 잠을 깨면 시와 소설을 습작하곤 했다. 피로를 잊고 집중력을 키우기 위해 커피를 많이 마시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다. 그러다가 저녁이 오면 이 집 저 집을 떠돌며 과외를 했다. 이런 내 모습을 지켜보는 아버지는 몹시 못마땅해하셨다.

“차라리 결혼이나 해라.”

“결혼한다고 뭐 달라지나? 이렇게 살면 어때서…”

“내가 단 일초라도 니 얼굴을 안 보면 병이 다 나을 것 같다.”

“아부지 아픈 기 내 탓이가? 나는 맨날 아부지 아픈 것만 보고 자랐다.”

아버지와 나는 어린애처럼 유치한 말싸움을 벌이며 서로에게 상처를 입혔다. 그런 날이면 나는 바흐의 ‘커피칸타타’를 들었다. 커피를 좋아하는 딸과 그것을 못 마시게 하려는 아버지의 신경전을 담은 레치타티보를 들으면서 어쩜 우리 부녀랑 꼭 닮은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하고 위안을 삼곤 했다.

이런 생활을 일 년쯤 했을까. 건강에 이상이 오기 시작했다. 불규칙한 생활과 나쁜 식생활, 크고 작은 스트레스로 인해 나는 앓아 눕고 말았다. 하지만 폐결핵을 앓던 그 몇 달 동안 나는 기어이 아버지의 본심을 읽고야 말았다. 아버지는 나를 싫어했던 게 아니라 표현하는 방식이 다른 아버지들과 조금 달랐을 뿐이었다.

그 해 사월, 동촌 둑길 가장자리를 뚫고 자생한 복숭아나무에선 분홍꽃이 흐드러졌다. 그 꽃분홍 아래에서 늙고, 병약한 아버지는 병원을 드나들던 딸을 기다리며 서 계셨다. 저녁 안개가 강 표면으로부터 자욱히 올라오던 방죽에 서서, 지팡이를 짚은 채 딸의 귀가를 기다리던 아버지의 표정을 잊지 못한다. 무거울 것도 없는 내 가방을 애써 뺏어들고 ‘이눔의 지지배야, 빨리 나아라. 니 결혼이나 하는 거 보고 죽으면 여한이 없겠다’ 하시던 아버지가 노인성 기침을 하면, 그 소리에 화들짝 놀란 복사꽃잎 몇몇은 저녁안개 속으로 흩어지곤 했지.

아버지는 이제 이 세상에 없고, 나는 이렇게 남아 봄날의 아버지를 추억한다. 소중한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순간적인가에 대해서도 자책한다.

다시 사월이다. 방죽길 모서리에 주인 없는 복숭아꽃이 흐드러지면 그 꽃 그늘에서 안부를 물어오는 아버지의 야윈 얼굴이 보인다.

<김살로메 약력>

1965년 안동출생

경북대 불문학과 졸업

포항문학 소설 신인상 당선(2003년)

영남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2004년)

    윤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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