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희
주황이는 늦게 눈을 떴습니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옵니다. 분명히 시간이 많이 흐른 것 같은데 어둡습니다. 벌써 나영이가 학교에 가는가 봅니다. 노란 비옷을 입고 노란 장화를 신고 있습니다.

“나영아, 빨리 신어. 학교에 늦겠다.”

재촉하는 나영이 엄마의 목소리입니다.

너무 바빠서 우리에게 인사도 하지 못하나 봅니다. 노란 우산을 들고 집을 나서면서 인사를 합니다.

“엄마,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 금붕어들아, 나중에 보자.”

“나영아, 열쇠 잘 열고 들어와. 알았지?”

다른 날 아침 같지 않습니다. 왜 이렇게 힘이 쭉 빠지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주위도 너무 조용합니다. 저만치에서 알록이가 끙끙 앓는 소리가 납니다. 그 옆에 달록이도 힘없이 축 늘어져 있습니다. 그렇게 컸던 왕눈이의 눈이 게슴츠레해졌습니다.

나영이 엄마도 무척 바쁜가 봅니다. 비 오는 날인데도 외출을 하나봅니다. 나영이가 나가자마자 겉옷을 걸치고 바쁘게 우리의 밥을 구멍으로 밀어 넣습니다. 아무도 아침밥 먹을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영이 엄마는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급히 우산을 챙기고 문을 나섭니다. ‘찰칵’ 하는 열쇠소리가 납니다.

주황이는 먼저 알록이에게로 갔습니다.

“알록아, 괜찮니?”

“아니, 온 몸이 아파. 움직일 수가 없어. 넌?”

“나도 조금 그래. 힘 내. 그리고 아침 먹자. 먹기 싫어도 먹어야 해.”

주황이는 물 위에 동동 떠 있는 아침밥을 한 입 물어와서 알록이 입 앞에 던져주었습니다. 알록이는 힘없이 한 알 두 알 억지로 삼켰습니다. 미처 먹지 못한 밥알이 위로 다시 올라가기도 했습니다. 주황이는 잽싸게 올라가서 또 한 입 물고 와서 알록이에게 먹였습니다.

“고마워, 주황아.”

알록이는 힘이 없는 목소리였지만 조금은 정신을 차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잘난 체 하던 알록이도 주황이가 고마운가 봅니다.

다음에는 달록이에게로 갔습니다.

“달록아, 많이 아프니?”

“응, 죽을 것 같아.”

“아니야. 밥을 먹으면 괜찮아질 거야.”

주황이는 또 물위에 떠 있는 밥을 한 입 가득 물어와서 달록이 앞에 뿌려줍니다. 달록이도 있는 힘을 다해 몇 알을 삼켰습니다.

왕눈이는 멍하니 한 곳만 보고 있습니다.

“왕눈아, 밥을 좀 먹자.”

“…….”

왕눈이는 대답이 없습니다. 여전히 한 곳만 보고 있습니다.

주황이는 무척 힘들었지만 밥을 물고 와서 왕눈이 앞에 내밀었습니다. 왕눈이는 입을 벌리지 않았습니다. 애써 물고 온 밥알이 위로 동동 떠올라 가버렸습니다.

주황이는 다시 위로 올라가서 한 입 가득 밥을 물고 왔습니다. 왕눈이가 주황이를 보는 것 같습니다.

‘빨리 먹어. 먹어야 정신을 차리지.’

주황이는 눈으로 이야기를 하며 밥을 한 알씩 내밀었습니다. 왕눈이는 입을 크게 벌렸습니다. 하지만 왕눈이의 입 가까이에서 올라 가버렸습니다. 또 한 알을 왕눈이 가까이에 놓아주었습니다. 겨우 왕눈이 입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힘들게 꿀꺽 삼켰습니다.

이제는 몇 알 먹을 수 있었습니다.

주황이도 힘이 빠졌습니다. 몸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꼼짝 하기 싫어졌습니다. 두 알 정도 밥을 먹은 것 같았지만 좋지 못한 몸으로 너무 많이 힘을 뺀 것 같습니다.

주황이는 지금까지 친구로 생각해 주지 않았던 금붕어들에게 왜 이렇게 정성을 다하는지 자신조차 알 수가 없습니다.

뒤뚱이라고 놀리고 같이 놀아주지도 않고, 그래서 얼마나 외로워하며 지냈는데 그것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그냥 같은 어항에서 살아가는 친구로 여겨졌습니다. 주황이의 가슴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던 예쁜 마음이 친구를 구하라고 손짓했기 때문입니다.

“아참.”

그러고 보니 점박이가 보이지 않습니다. 맥없이 있다가 갑자기 점박이를 떠올린 것입니다. 방금 밥을 먹은 금붕어들은 잠이 든 것 같습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점박이가 없습니다. 천근이나 되는 것 같은 몸을 이끌고 이리저리 점박이를 찾아 나섰습니다. 보통 때 보다 훨씬 넓어진 어항 같습니다. 한참 헤엄을 쳤는데도 조금밖에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수초를 헤집고 바위를 돌았습니다. 점박이가 보였습니다. 바위틈에서 숨을 할딱이고 있습니다.

“점박아!”

소리를 질렀는데 피라미 소리보다 작게 흘러나왔습니다.

다른 때는 살랑살랑 잘도 빠져나가던 바위틈인데 점박이는 꼭 그물에 갇힌 물고기처럼 꼼짝하지 못합니다.

“점박아, 힘내. 여기서 빠져나가자.”

주황이는 꽁무니 쪽에서 있는 힘을 다해 점박이를 밀었습니다. 점박이는 여전히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점박아. 편한 곳으로 가자. 가서 밥을 먹어야지.”

다시 한 번 점박이를 세게 밀었습니다. 그래도 점박이는 가만히 있습니다.

‘이제 마지막이다. 에잇.’

주황이는 뒤로 물러났다가 세차게 헤엄을 쳐서 점박이 꽁무니에 박치기를 했습니다. 점박이의 몸이 흔들리더니 틈을 빠져나갔습니다.

주황이의 머리가 어질어질합니다. 하지만 점박이도 힘을 내려면 밥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몽사몽인데도 한쪽으로 몰려가 물위에 떠 있는 밥알을 힘껏 물었습니다. 그리고 완전히 지친 점박이에게 주었습니다. 점박이도 눈이 풀려 먹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점박아, 먹어야 돼. 먹지 않으면 기운을 차릴 수가 없어. 응.”

점박이는 먹지 않아도 편안해졌는지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습니다. 다른 금붕어들을 먹이느라고 정성을 쏟던 주황이도 더 이상 이기지 못하고 스르르 잠이 들었습니다.

주황이는 꿈을 꾸었습니다. 거기에는 여러 금붕어들이 있었습니다. 조금 전 주황이가 아침밥을 먹여준 금붕어들도 있었고, 그렇게 그리워하던 까막이도 있었습니다. 그곳은 넓은 바다였습니다. 이리저리 꼬리를 따라가는 장난도 치고 깔깔깔 웃기도 하며 신나게 놀았습니다. 물 위로 떠오르면 해님이 방긋 웃고 있는 것도 보입니다. 해님은 고운 햇살을 바다 속까지 살며시 밀어 넣어줍니다. 금붕어들의 몸이 무지개 색으로 빛나고 있습니다. 까막이의 고운 피부는 맑은 까만 색으로 빛나고 있습니다. 언제까지나 아름답고 평화롭게 살아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장성희씨 약력>

경남대 국어교육과 졸업

2001년 수필 ‘풍경’으로 등단(한맥문학)

2004년 동화 ‘친구’로 신인상 수상(오늘의 문학사)

한맥문학, 문학사상, 열린문학, 삶터문학 회원

    윤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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