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순희수필가
시댁에서 내내 남의 편이었던 사람이 친한 척 산책을 가자고 졸랐다. 온갖 전 부치며 박인 근육도 풀 겸 따라 나섰다. 제 방에 누워 휴대폰만 쳐다보는 둘째까지 데리고 말이다. 나서기 전에 다짐을 받았다. 분명 산책이니 기껏해야 한 시간 정도 거리여야하고 오르막길은 절대로 가지 않겠다고.

월포 포스코 연수원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오늘 산책할 곳은 `용산`이었다. 밑에서 딱 봐도 오르막이다. 출발하자마자 너무 가파르다고 나는 칭얼거렸다. 남편은 조금만 가면 내리막길이 나온다며 더 가자고 달랬다. 새로 장만한 휴대폰을 펼쳐서 우리가 걷는 동안 칼로리가 얼마나 소모되는지, 몇 미터 왔는지, 속도도 알 수 있다며 내 관심을 다른 데로 돌려 기어이 끌고 올라갈 속셈이었다.

미리 다운 받아 놓은 노래 소리가 숲에 울려 퍼졌다. 노래가 듣기 좋아 가파른 길을 참아가며 올랐다.

헉헉. 이십 분을 올라도 오르막길뿐이었다. “이게 무슨 산책이야?” 힘겹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투덜거렸다. 올라갈 때 힘들면 내려오는 건 쉽지 않느냐며 남편은 나를 다독였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아무리 산행에 대해 모르는 나지만, 이런 가파른 길은 내려올 때가 더 힘들다는 것 정도는 안다. 무릎에 힘을 주며 조심해서 내려와야 하니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사십 분 정도 오르는 동안 내내 투덜거렸다. 투덜거리는 나를 산이 알아차린듯 이내 쉼터가 나타났다. 소박하게 나무에 매달린 표지판에는 정상이라고 써 있다. 조그맣고 빨간 우체통도 웃으며 우리를 반겼다.

벤치에 앉아 물 한 모금 마시며 숨고르기를 하자니 귓가에 `쏴아` 하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 올라오는 길에 계곡은 말라있어서 물소리는 아니었다. 이게 무슨 소리일까, 말소리 숨소리를 잠잠히 하자 더 잘 들렸다. 파도소리였다! 산 속에서 바다가 만들어내는 음률을 들을 수 있다니. 소리에 취한 나를 보며 남편은 자신이 만들어 낸 소리인양 으스댔다.

조금만 소리를 따라 나아가니 월포 바다가 한눈에 펼쳐졌다. 늘 보는 바다지만 산위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감흥이 다르다. 발치에 바다를 끼고 있는 용산의 위엄이 이런 풍경을 만들어내 순식간에 내 몸을 파랗게 채워 버렸다. 조금 더 눈길을 왼편으로 옮기니 이젠 청하면 월포리 평야가 누런빛으로 일렁거렸다. 긴 호흡으로 그 자리에 머물렀다.

길섶에는 고인돌도 몇 기 보인다.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면 풍요를 비는 곳이었을 테고, 때로는 자식의 안위를 빌러 우리의 어머니들이 찾은 곳이기도 했을 것이다.

지금은 등산로에서 이정표가 되기도 하고 아이들의 소풍장소가 될 때도 있다. 청동기인들도 오늘 내가 섰던 곳에서 바다와 평야를 눈에 담았다고 커다란 바위가 묵직하게 알려주었다. 고인돌의 움푹한 곳마다 옛날이야기가 서려있다.

올라갈 때는 한 시간이나 걸리던 길이 내려올 때는 순식간이었다. 남편 손을 잡고 나뭇가지에도 의지해 미끄러지지 않으려 애를 썼다. 그럴 때마다 풍경은 잊어버리고 잔소리만 되풀이 했다. `겸재정선 감사둘레길`이란 길 이름이 무색해졌다.

동행하는 이가 남편이 아니었다면 입도 안 떼고 따라 갔을 길이다. `랄랄라 랄랄라` 노래하며 등장한 스머프 만화가 생각났다. 투덜이 스머프는 모든 일에 짜증이며 트집이었다. 오늘 내가 남편에게 보인 모습이다. 나는 엄마를 닮아 처녀 적부터 무릎이 튼튼하지 못하다. 발도 평발이라 오래 걷는 데는 소질이 없다. 엄마는 몇 해 전 인공관절을 무릎에 넣었다. 수술 후 옆에서 돌보는 내내 마음이 아플 정도로 힘들어 해서 나도 그 길을 따라 가게 될까 봐 겁이 났다. 긴 투덜거림에 변명은 더 길어진다.

투덜이 스머프도 분명 관절염을 앓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