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용·시간 줄이고 금융사고 예방 위해
금감원, 2020년 9월부터 미발급 의무화
60세 이상 아닌 고객은 발급 비용 부담

“하나는 주택청약, 하나는 적금, 나머지 하나는 결혼식 통장이다.”

몇 년 전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 남자는 자신이 가진 통장 세 개를 여자의 손가락에 끼워주며 프러포즈를 했다. 여자는 눈물을 글썽이며 남자의 마음을 받아들인다. 일명 `통장 프러포즈`로 불리는 이 장면은 시청자들에게 큰 공감을 샀다.

자산관리 능력을 드러냄과 동시에 사랑을 표현하는 도구로도 쓰인 종이통장이 점점 자취를 감출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부터 종이통장 발급 여부를 선택할 수 있게 된 데 이어 3년 후엔 종이통장 미발급이 의무화된다.

금융감독원은 `통장기반 금융거래 관행 혁신방안`에 따라 오는 2020년 9월까지 종이통장 발행관행을 단계적으로 감축할 방침이다.

우선 지난 9월부터 전국 은행 창구에서 계좌를 개설할 때 종이통장 발급 여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2020년 9월부터는 종이통장 미발급을 의무화하고 신규 계좌 개설 때 종이통장을 만드는 고객은 5천원~1만8천원의 통장 발급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으로 계좌를 개설하고 간편하게 이체하는 디지털금융이 확산된 결과다.

금융권에 따르면 신규 종이통장 발급계좌는 지난 2012년 81.2%에서 2016년 66.8%로 줄었다. 반면 종이통장을 발급하지 않은 온라인전용 계좌는 같은 기간 18.8%에서 33.2%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종이통장 없애기, `페이퍼리스` 움직임은 전 세계적인 디지털금융 흐름이다. 미국 은행은 1990년대, 영국은 2000년대 들어 종이통장을 발행하지 않고 중국과 일본 은행도 2010년대 들어 고객이 요청할 때만 종이통장을 발행한다. 통장발급에 따른 비용을 줄이고 불법거래된 종이통장이 대포통장으로 사용되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다.

30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제작원가에 인건비·관리비까지 합치면 종이통장 1개당 5천원에서 최대 1만8천원가량의 비용이 발생한다. 은행들이 찍어내는 종이통장은 해마다 1천만개. 금융당국은 종이통장 발급이 줄면 불필요한 비용과 시간을 단축하고 대포통장과 같은 금융사고 예방 효과도 클 것으로 전망했다.

종이통장이 없어도 계좌를 개설할 때 전자통장과 예금증서가 있기 때문에 돈을 맡기거나 찾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 인터넷뱅킹으로 거래내역 조회가 가능해 언제든지 금융거래 사실을 증명할 수 있다. 오히려 통장분실로 인한 도용 피해 가능성이 크고 재발행 비용과 같은 불편사항이 더 많다는 지적이다.

디지털 금융이 익숙하지 않은 60세 이상 고객은 2020년 이후에도 무료로 종이통장을 사용할 수 있다. 종이통장 발행을 원치 않는 경우에만 예금증서를 발행해주거나 이메일을 통해 거래명세서를 전송하는 방식이 적용된다.

포항시 북구의 A은행 관계자는 “원하는 고객에게만 종이통장을 발급하면서 사무실에서 사용하는 종이도 줄이는 추세”라며 “서류 대신 디지털 기기를 이용하는 영업점이 늘어나면서 은행업무 대부분을 전자서식으로 처리할 수 있어 업무가 간편해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입출금통장과 체크카드를 만들 때에는 고객 서명을 28차례 해야 하지만 디지털 창구에선 5차례만 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소비자 반응은 연령대에 따라 나뉜다. 디지털 금융에 얼마나 익숙한지에 따라 반응이 갈린다.

직장인 김모(29) 씨는 “인터넷은행 계좌가 3개 있지만 종이통장은 하나도 없다”면서 “과거 부모세대는 정기적으로 통장 정리를 해가며 돈을 관리하는 게 익숙했지만 지금은 인터넷뱅킹으로 언제 어디서나 입출금 현황을 확인할 수 있어 통장관리를 보다 똑똑하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디지털 금융이 낯선 고령자와 같은 `금융소외자`는 오히려 역차별받을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죽도시장 상인 이모(57) 씨는 “아무리 인터넷이나 휴대전화로 빠르고 편리하게 금융거래를 할 수 있다고 해도 직접 눈으로 입출금 내역을 확인해야 마음이 놓인다”면서 “종이통장이 사라지면 불안감에 시달릴 것 같은데 그렇다고 통장발급 비용을 지불하자니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금융당국과 금융회사가 비용절감 효과에 주목해 무통장거래를 유도하기에 앞서 종이통장 감축대책 홍보부터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금융산업이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트렌드에 대응하기 위해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을 가속화하는 분위기 속에서 고객 중심의 혁신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 류창원 연구위원은 “국내에는 우수한 IT기술,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통신망과 더불어 글로벌 테스트베드 역할을 하는 소비자가 존재한다. 이를 기반으로 디지털 전환에 나선다면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트렌드는 더 이상 생존 위협이 아니라 경쟁력 제고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민정기자 hykim@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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