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유도회경북본부
27일 영양문예센터서 학술대회
권태시 고을원 `돌직구 상소문`
오늘 정치권에 시사하는 바 커

▲ 안동청년유도회 회원들이 산택재 권태시 선생이 회덕 현감직에서 물러나 낙향 후 머물면서 학문에 정진한 영양군 입암면 만경대 정자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성균관유도회 경북본부 제공

“이미 겨울은 깊어지는데 국법이 두려워서 환곡을 갚은 자는 끼니가 끊겨 벌써 새 환곡을 학수고대하고 있고, 미처 갚지 못한 자는 법에 따라 형틀에 몸을 맡겨야 할 지경입니다. 이런 데도 국법대로 환곡을 회수할 수 있겠습니까?”

벼슬아치들의 4색 당파싸움이 극에 달해 있던 조선중기 숙종 16년(1690). 당시 충청 회덕군에 갓 부임한 신임 현감 산택재 권태시(1635-1719)의 `돌직구 상소문` 내용이다. 그의 민본주의와 애민사상을 되새기고 400년 전 사색당정을 반추해 오늘을 비춰 보는 학술대회가 열린다.

성균관유도회경북본부(회장 안승관)는 오는 27일 오전 10시 영양군문화센터에서 `산택재 권태시 선생의 학문과 사상`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한다.

학술대회에서는 박영호 경북대 교수를 좌장으로, 김은종 고려대 교수와 신도환 안동대 교수가 각각 `산택재 선생의 임관(任官)기 상황에 대해`, `산택재 선생의 생애와 문학세계`라는 주제발표를 한다. 이어 김세중 연세대 교수, 이성호 성균관 한림원 교수, 강일호 성균관유도회 부회장, 김명균 교남문화 대표 등이 토론을 벌인다.

안동권씨 부정공파 대곡, 문해문중 산택재 권태시. 그의 `돌직구 상소문`은 최근 문중에서 산택재 문집을 번역, 국역본을 발간하면서 내용이 세상에 처음 알려지게 됐다. 55세의 나이로 늦깎이 고을원이 된 그는 부임하자마자 탐관오리들의 오랜 학정(虐政·가혹한 정치)으로 피폐하기 이를 데 없는 백성들의 고된 삶부터 꼼꼼하게 살폈다.

당시 탐관오리들의 학정은 당쟁에만 몰입, 권력투쟁을 일삼는 조정 대신들의 민생외면으로부터 기인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숙종 16년 이후엔 노론이 지금의 여당처럼 권력을 잡고 조정을 장악한 상황임에도 남인 출신이었던 그는 여야를 불문하고 임금과 조정대신들을 향한 직언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의 상소문은 당시 남인·북인 노론·소론 등 사색당파로 갈려 연일 당쟁만 벌인 벼슬아치들의 민생외면으로 도탄에 빠진 백성들의 고된 삶을 낱낱이 적어 직언하고 있다. 이는 최근 북핵사태로 급박해진 안보 위기 속에서도 연일 5당 5색의 당쟁만 반복하는 작금의 정치권을 향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그는 상소문뿐만 아니라 당시 유력한 대신들에게도 개인적인 서신을 보내 이중삼중으로 겹쳐진 중과세와 굶주림에 지친 백성들을 구할 방도를 찾아 동분서주했다고 한다.

“가만히 생각건대 임금과 재상이 하셔야 할 백성에 대한 걱정을 일개 고을원이 분수에 넘치게 하여 주제넘고 경솔함이 여기에 이르렀지만 이를 감수하면서 이렇게 서신을 전달하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자애로우신 대감께서 조정 군신간 경연의 자리나 조정의 국사를 논하는 즈음에서 이러한 우려를 참작하신다면 혹시라도 백성들을 선처할 방도가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구구절절이 민본주의, 애민정신이 스며있는 목민관의 글이다. 그는 1694년(숙종 20년) 사색당쟁이 더욱 극심해 갑술환국으로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당쟁 중단을 요구하는 상소문을 또다시 여러 번 올렸다. 하지만 그는 뜻이 관철되지 않자 그 길로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 난진이퇴(難進易退)를 실천하면서 학문에만 전념했다.

그가 회덕현감 재직당시 경험을 살려 백성의 입장에서 고을 수령이 지켜야 할 도리를 적은 목민관 지침서 `거관요람`은 나중에 그의 증손자 권방이 친구인 다산 정약용에게 보여 주면서 `목민심서` 집필의 기초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시덕 성균관유도회 사무처장은 “민주주의와 일맥상통하는 산택재 선생의 애민사상과 민본주의는 오늘날에서도 그 가치를 높게 평가받고 있다”면서 “선생은 고을원으로서 오로지 백성들을 위해 군주와 대신들에게도 직언을 서슴지 않는 공복으로서 망국의 당파싸움을 일깨워 반면교사의 시대적 교훈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손병현기자 why@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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