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영재<br /><br />포항예총 회장
▲ 류영재 포항예총 회장

포항전국사진공모전 시상식장에서 뜻밖의 선배를 만났다. 그는 공모전에 출품하여 입선을 했고, 사진협회 가입에 필요한 점수를 확보하여 곧 한국사진작가협회 회원으로 가입할 것이라 하였다. 말하자면 정식으로 사진예술가가 되는 것이다. 잘 아는 사이라고 믿어왔던 그 선배의 평소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면모에 잠시 어리둥절하였으나 직장에서 퇴직한 후 현재의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바로 공감이 되었다. 아침시간에는 수영장에서 운동하고, 낮에는 카메라 포커스에 집중하다가 저녁에는 탁구와 하모니카를 배우러 다닌다고 한다.

평소 예술과 체육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으며 특별한 재능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퇴직을 한 현재의 일과는 대부분 예술 활동과 체육 활동이다. `국영수`가 가장 중요하다 믿었던 학생 시절을 지나 평생 직업으로 교사를 하는 동안 예술, 체육과는 너무나 동떨어질 삶을 살아왔던 그 선배는 이제 노후를 예술가며 생활체육인으로 살아갈 것이라 하였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대학시절 학교울타리 옆 하숙집이었다. 당시 나는 화실에서 미대입시생 가르치는 일로 학비며 생활비를 마련하다가`80년의 봄`을 맞으며 대학생 과외금지령이 내려지는 바람에 화실을 접고 잠시 학교 가까이서 하숙을 하며 새로운 길을 모색하던 때였다. 낭만을 예술가의 필수 항목으로 알고 있던 필자의 눈에 비친 그 선배는 너무나 반듯한 생활에 ROTC 복장까지 한 모범생이었으니 그에게 예술인의 피가 흐른다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후에 나는 고향으로 돌아와서 미술교사를 했고, 그도 캠퍼스커플인 포항여고 출신의 형수를 따라 포항에 정착했다. 전공은 다르지만 같은 교직에 있다 보니 더러 만날 기회가 있었고, 몇 년간은 같은 학교에 근무하기도 했다. 그는 모든 면에서 반듯하여 사표가 되는 교사였지 낭만적인 예술가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는데, 퇴직 후 인생 2막의 시작에서 예술의 꿈을 펼치고 있다니 예술단체 대표직을 맡고 있는 필자로선 여간 반가운 게 아니다.

언제부턴가 웰빙이란 말이 유행처럼 번지더니 요즘은 웰다잉이 화두가 되곤 한다. 말 그대로 번역하면 `잘 살기`와 `잘 죽기`일 것이니 서로 반대의 의미일 듯하다. 그러나 의외로 그렇지 않게 사용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삶과 죽음에 대한 인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거룩한 죽음이 있는가 하면 죽음보다 못한 삶도 있고, 갠지스 강변처럼 삶과 죽음의 공존이 일상인 곳도 있으니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라던 분의 마지막 말에 공감이 가기도 한다.

인간수명의 증가로 요즘은 100세 시대라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느낀다. 보통 60세 전후면 직장에서 정년을 맞이하는데, 100세까지 웰빙하고 웰다잉하기 위해서는 뭔가 가치 있는 일을 새롭게 찾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예술이라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예술 환경의 조성은 인간행복의 필요충분조건이다. 필자는 최근 포항에`예술의 전당`건립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의견을 말한 바 있다. 사실 필요성을 느낀 것은 최근이 아니라 오래된 일이다. 그러므로 지난 수년간 늘 관심을 가지고 다른 도시의 경우는 어떠한지를 살폈고, 우리 시에는 어떠할까를 고민해왔다. 랜드마크가 될 건축에는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므로 신중해야 한다. 전문가들의 자문을 얻고, 면밀한 타당성 조사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 일의 성사를 위해서는 포항시와 시의회 등 행정과 긴밀하게 협의해야 함은 물론이며, 수요자이며 수혜자가 될 시민들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결국 모든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는 말이니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우선 예총의 8개 예술단체 협회장들이 동의하였고, 1천명 예총회원들의 공감을 얻었다. 적자운영을 우려하며 따갑게 충고하는 시민의 목소리도 있다. 분명히 유념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예술에 대한 투자와 셈법은 조금 달라야 한다. 문화예술이 시대의 물결이며, 예술의 가치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많은 선행학습이 이루어진 후에야 비로소 가능한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