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재휘논설위원

재임 중 원자력발전소 축소정책을 폈던 프랑수아 올랑드 전 프랑스 대통령이 얼마 전 서울 장충동 장충아레나에서 열린 제18회 세계지식포럼 기조연설에서 한 말은 뜻밖이었다. 그는 연설에서 “프랑스 전력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전히 원전”이라며 “포퓰리스트들은 탈원전 문제를 너무 성급하게, 쉽게 말한다”고 지적했다.

신고리5·6호기공론화위원회(공론화위)는 정부에 신고리5·6호기 공사를 재개할 것을 권고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최종 여론조사에서 `건설 재개` 쪽을 선택한 비율이 59.5%로서 `건설 중단` 쪽을 선택한 비율 40.5%보다 19% 포인트 높았다.

의아스럽게도 청와대가 앞장서서 호들갑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공론화위 발표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번 공론조사를 “감동적인 과정이었다”고 평가했다. 나아가 이 모델을 다른 사회갈등 현안에 적용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우리 정치권에 `숙의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라는 개념이 강력한 또 하나의 화두로 던져지고 있다.

대의민주주의를 선택한 우리나라의 국회가 끝 모를 정쟁에 휩쓸려 제 역할을 해오지 못한 얼룩진 정치사는 길고도 복잡하다. 그 끝에서 대통령마저 `직접민주주의`와 `숙의민주주의` 같은 새 길을 언급하고 있는 현실은 착잡한 일이다. 행정수반이 저래서는 안 된다는 비판과 국회가 얼마나 구제불능이면 저럴 것이냐는 공감이 교차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 국회는 도무지 진정한 수치심이 없다. 청와대가 국민지지를 등에 업고 입법부의 권능을 잇달아 깔아뭉개고 있는데도 마땅한 반성과 처신은 아랑곳없이 고리타분한 권위주의 행태만 거듭하고 있다. 예민한 국가적 이슈에 대한 해결능력을 상실한 이빨 빠진 사자들의 메아리 없는 으름장만 무성하다.

더불어민주당 강훈식 원내대변인은 공론화위의 결정에 대해 “좋은 선례”라는 초라한 평가를 내놨고, 자유한국당 전희경 대변인은 “공론화위라는 조직으로 책임을 떠넘기고자 했다”고 지적했다. 국민의당 손금주 수석대변인은 “막대한 손해는 누가 책임질 것이냐”고 따졌고, 바른정당 전지명 대변인은 “포퓰리즘이 만들어낸 재앙의 시작점”이라고 힐난했다.

걱정스럽다. 입법·사법·행정 3권이 올곧게 따로서지 못한 얼치기 민주주의국가에 살고 있다는 현실이 새록새록 서글퍼지는 나날에 민초들의 걱정과 의심은 늘어만 간다. 대통령의 무리한 공약 하나를 고치기 위해 천문학적 재정이 낭비돼야 하고, 수많은 지역민들이 피폐위기에 떨어야 하는 게 이 나라다. 선거를 통해 선출된 국민의 대표자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다시 유권자에게 `외주`를 줘서 해결해야만 하는 게 이 나라다.

문 대통령은 지난 6월 19일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원전 중심의 발전정책을 폐기하고 탈핵시대로 가겠다”고 밝혔다. 멋있어 보였다. 웬만한 다른 나라에서는 엄두도 못 낼 `탈핵` 선언을 용감하게 했으니 참 멋있는 이벤트였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뚜껑 열고 보니 친환경에너지 대체정책이란 것은 씨도 안 먹힐 탁상공론이고, 원전 수출전선에는 `자살폭탄`이 터지고 말았다. 원전수주 경쟁국들이 대한민국 대통령의 `탈핵` 선언 동영상을 앞으로도 얼마나 더 틀어댈 것인가. 원전산업에 온통 기대어 달려왔던 동해안 지역 지자체들은 폭격을 맞은 듯 아수라장이 됐다. 청와대의 반응은 아무리 곱씹어보아도 생뚱맞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감동적`이란 말인가.

묻고 싶다. 신고리 5·6호기 건설현장을 그렇게 꼭 멈춰놓고 답을 찾아야 했는가. 앞으로도 약속을 뒤집고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 `공론화위원회`라는 이름의 비겁한 수단을 정말 계속 동원할 참인가. 국회는 왜 `숙의민주주의`라는 심층적인 해법을 동원하지 못하는 것인가. 나라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포퓰리즘과 이벤트 정치의 그늘이 깊고도 음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