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일 부산 수영구 남천성당에서 지난 14일 선종한 천주교 부산교구의 원로 사제인 하 안토니오(안톤 트라우너) 몬시뇰의 장례미사가 엄수되고 있다. /연합뉴스
시인 신경림은 그의 시 `가난한 사랑 노래`를 통해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라고 말했다. 바로 그 가난한 자의 외로움과 두려움을 함께 아파하고 위로해주던 푸른 눈의 성직자 한 명이 선종(善終)했다. <사진> 지난 14일 오전 9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천주교 부산교구 원로사제 하 안토니오 몬시뇰은 일생을 가난한 자들의 친구로 살았던 사람이다. 1922년 10월 14일 독일 남부 베르팅겐에서 태어난 안토니오 몬시뇰은 1958년 독일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는 서른여섯이 되던 바로 그 해, 여전히 전쟁의 고통과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가난한 나라` 한국으로 왔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4년간 포로생활을 한 경험이 있는 그는 북한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돌아온 독일인 신부에게 전후(戰後) 참담한 한국의 현실을 전해들은 후 한국으로 가겠다는 결심을 굳혔다고 한다.

젊은 나이에 한국에 온 그는 가난한 이들이 모여 사는 판자촌 성당에서 자신이 맡은 바 소임에 충실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965년에는 스스로의 힘이 아니면 학업을 이어가기 힘든 학생들을 위해 한독여자실업학교를 세웠고, 1977년엔 조산원을 만들어 15년간 2만6천여 명의 새 생명을 안전하게 탄생시키는데 힘을 보탰다.

2005년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그의 희생정신과 봉사하는 삶을 높이 평가해 가톨릭교회 명예 고위 성직자인 `몬시뇰`에 임명했다. 이와 함께 2011년엔 부산 명예시민장이 수여됐고, 2015년에는 국민훈장 모란장이 안토니오 몬시뇰에게 주어졌다.

그는 2015년 고통과 분단의 현장인 임진각에서 1.2㎞ 떨어진 위치에 남북의 통일과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파티마 평화의 성당`을 세우고 평화와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미사를 해마다 봉헌한 사제이기도 했다.

안토니오 몬시뇰은 생전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가난한 사람을 도우면서 더 큰 기쁨을 얻는 것은 나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앞으로도 한국에서 한국 사람으로 살다가 하느님의 나라로 기쁘게 가겠다”는 요지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그의 장례미사는 16일 오전 10시 부산 남천성당 엄숙하게 진행됐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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