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야당으로 전락한 자유한국당의 행보가 힘겹다. 뼈를 깎는 자성으로 참회하고, 새로운 인재를 영입해 새 바람을 일으키려해도 마땅치 않다. 한국당은 아직도 친박청산,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출당문제 조차 매듭짓지 못한 채 엉거주춤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재판이 진행중인 박 전 대통령의 태도도 많은 국민들의 반감을 사고 있다.

여러 언론보도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아직도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통령의 심사를 요약해 보면 이렇다. “나는 나라를 위해 내 삶을 바쳤다. 부정한 돈은 단 한푼도 가지지 않았다. 그런데 왜 내가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나. 최순실에게 자료를 보낸 것도 나라를 더 잘 운영하기 위해서였을 뿐이다. 재판에서 나의 억울함을 밝히겠다.”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의 부인 엘레노어 루스벨트는 “자기 자신은 머리로 다스리고, 다른 이들을 가슴으로 대하라”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이 대통령을 지낸 만큼 최측근인 최순실에게 특혜가 주어졌다면 박 전 대통령도 당연히 법적·정치적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돈을 직접 받았느냐 안받았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다. 모두가 본인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닌가. 박 전 대통령이 자신의 잘못은 머리로, 국민들에게는 가슴으로 대했다면 어땠을까. 이 모든 사태가 모두 자신의 잘못때문이며, 국민들앞에 용서를 구하고, 모든 것을 짊어지고 물러났다면…. 자유한국당 친박계 의원들의 무책임한 태도도 논란거리다. 선거때마다 명함이나 현수막, 팸플릿에 대문짝만하게 박 전 대통령의 사진을 싣고, 박 전 대통령의 후광을 업으려 용쓰던 사람들이었다. 이들 가운데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된 후 함께 책임지겠다고 나선 사람이 하나도 없다. 친박 청산없이 보수통합이 어려우리란 정치적 전망은 애써 외면한다. 자진사퇴 요구도 못들은 척 눈깜짝하지 않는다. 다만 정치적·도의적 책임을 지지않으려니 박 전 대통령에 관련한 모임엔 얼굴을 내비친다. 28일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추가발부 신청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에 앞장선 10여 명 친박계 의원들의 궁색하고 낯뜨거운 속내다.

`최순실 국정농단게이트`와 대통령 탄핵·파면, 대선으로 이어지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묵묵히 지켜본 대구 경북민들의 심경은 어떨까. 사태 초기에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그래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측근인 최순실에게 힘을 실어주다 생긴 일이고, 부정한 돈을 받은 것도 아니지 않느냐. 대통령직에서도 파면됐고, 감옥에 갇혔다. 이제 야당이 정권을 잡았으니 사면해주면 안되나”하는 반응들이 적지않았다. 그랬던 지역민들이 대선이후 자유한국당이 당의 면모를 새롭게 바꾸고 혁신하는 데 힘겨워하는데다, 민주당 정책에 대한 불만이 커지면서 한국당이 대항세력으로 똑바로 서기를 바란다. 그래선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날카로워지는 분위기다. 비판의 요지는 이렇다. “박 전 대통령이 모든 게 자신의 부덕탓이라고 시인하고, 국민에게 용서를 구하면 법원도 가혹한 중형을 선고하지 않을 것이다. 자유한국당 역시 박 전 대통령의 족쇄를 벗어나 힘을 얻는다면 그 이후 영어의 몸에서 더 빨리 벗어날 수 있을 것인데, 왜 반성하지 않나”

`득총사욕(得寵思辱) 거안려위(居安慮危)`(명심보감 성심편)라 했다. `남에게 유달리 사랑을 받거든 앞으로 욕이 돌아올까를 생각하고, 편안히 살거든 앞으로 위험이 닥쳐올까를 미리 염려하라`는 뜻이다.

국민들에게 유달리 많은 사랑을 받았던 박 전 대통령이 조금이라도 욕이 돌아올까를 걱정했다면 오늘 이같은 곤궁에 처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집권여당으로 잘 나갈 때 정치적 위기가 닥쳐 야당이 될 수 있다는 걸 염려했다면 자유한국당 역시 오늘과 같은 곤궁에 빠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한국당의 위기는 `후회는 있어도 참회는 없는` 태도에서 비롯됐다”고 했다. 가슴을 울리는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