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차돈·원효 양성사 봉찬회
경주 흥륜사서 추모제 개최

▲ `순교 1490년 이차돈 성사 추모제`에는 승려와 불교신자 200여 명이 자리를 함께 했다.

“이 세상 가장 귀한 게 사람의 목숨이라지만, 큰 뜻과 나라를 위해 죽는 것을 두려워해서야 어찌 그를 대장부라 부르겠습니까. 나의 죽음으로 이 땅에 불법(佛法)이 제대로 설 수 있다면 제 목숨을 아낄 이유가 없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490년 전. 불교의 공인이 절실했던 신라 법흥왕 앞에 선 스물한 살 청년 이차돈은 위와 같이 말하며 죽음을 자처했다. 이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등의 고서를 읽은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

처형자에 의해 베어진 이차돈의 목에서는 붉은 피가 아닌 흰 젖이 쏟아졌고, 머리는 멀리 서라벌 백률사 대나무 숲까지 날아가 떨어졌다. 이런 기적에 놀란 신라의 관료들은 더 이상 불교 공인을 반대하지 못했다.

이후 법흥왕은 불교를 이데올로기로 강력한 중앙집권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 신라가 삼국통일의 기틀을 닦은 것도 이 시기라고 보는 학자들이 적지 않다. 한 사람의 젊은이가 버린 생명이 신라가 `천년 불교왕국`으로 발전하는 길을 열었던 것이다. 이차돈 성사는 서라벌 최초의 순교자(殉敎者)였다.

지난 24일 오전 11시. 경주 흥륜사에서는 `이차돈 성사 추모제`가 열렸다. 흥륜사는 이차돈의 순교 이후 법흥왕과 진흥왕의 명령으로 축조된 사찰이다. 왕이 아꼈던 절이기에 지난시절엔 `대왕 흥륜사`로 불리던 곳이다.

(사)이차돈·원효 양성사 봉찬회가 주최하고 흥륜사가 주관한 이날 추모제엔 이차돈 성사의 삶과 죽음을 기억하고, 그의 발자취에서 오늘날 불교가 나아갈 길을 고민하는 승려와 불교도 200여 명이 모였다.

이차돈·원효 양성사 봉찬회는 `초대의 말`을 통해 “번뇌망상의 고통에서 해탈해 청정한 불심으로 믿음의 끈을 맺어줬다”는 말로 이차돈의 순교를 높이 평가하며, 향후 “하루하루가 성불의 날이 되고 정토가 청정히 빛나도록” 불자들의 정진을 당부했다.

추모제를 알리는 타종 이후 연단에 오른 경주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 강석근 소장은 참석자들에게 이차돈 성사에 관한 상세한 설명을 들려줬다.

강 소장은 “흥륜사는 이차돈의 큰 뜻이 서려있는 절이다. 그의 순교는 신라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꾸어놓았다”며 향후 이차돈의 순교가 가지는 역사적·문화적 의미에 관한 연구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뜻을 함께 전했다.

이어진 추모시 낭독에는 흥륜사 한주인 법념 스님이 나섰다. 법념 스님은 지난 8월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열린 `2017 이차돈 성사 학술발표회`에 토론자로도 참여해 이차돈과 그의 사상을 대중들에게 알린 사람 중 하나다.

법념 스님의 낭송한 이차돈 추모시에는 젊은 날 목숨을 버린 청년에 대한 안타까움과 더불어 향후 불자들이 열어갈 우리 사회의 미래까지가 오롯이 담겨있었다.

흥륜사 주지 구화 스님의 인사말과 최양식 경주시장을 대신해 경주시 문화관광실장이 읽은 추모사 이후에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 은해사 주지 돈관 스님의 법어가 진행됐다.

돈관 스님은 “오늘은 슬프면서도 감동적인 날”이라며 “죽음으로 불법을 세운 이차돈 성사를 기리는 이 자리의 의미를 모두가 가슴 속에 새기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어 돈관 스님은 “1490년 전 바로 오늘, 한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며 하늘도 울고 땅도 울었다. 그 울음 끝에 생겨난 절이 바로 흥륜사”라는 말로 참석자들에게 추모제의 중요성을 한 번 더 환기시켰다.

행사의 피날레는 안형수 씨의 클래식기타와 정원영 씨의 바이올린 연주가 장식했다. 두 사람은 한국인들의 귀에 익숙한 `아리랑`과 `고향의 봄`은 물론, 스페인과 프랑스, 헝가리와 북유럽 작곡가들의 작품까지를 두루 연주해 추모제 참석자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추모제를 마친 참석자들은 소나무 그늘 아래 삼삼오오 모여 앉아 흥륜사에서 마련한 점심을 들며 이차돈 성사에 대한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했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 길목. 흥륜사에서 열린 `순교 1490년 이차돈 성사 추모제`는 기억한다는 것과 기억 속에 남는다는 것의 의미를 동시에 전해준 의미 있는 행사였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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