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동궁과 월지서
석조 변기·배수시설 출토
구멍 뚫린 석조물 위로
양다리 딛고 앉는 돌 조합
변기에 물 흘려보내
기울어진 고랑으로 오물 제거
최상위층 화장실 모습 유추

▲ 경주 동궁에서 나온 변기.

경주 동궁과 월지에서 신라 왕궁의 수세식 화장실 유적이 나왔다.

동궁(東宮)과 월지(月池)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직후 문무왕 14년(674년)에 세워진 동궁과 주요 관청이었던 곳이다.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경주 동궁과 월지(사적 제18호) 북동쪽 지역에서 발굴조사를 진행해 초석 건물지 안에 있는 석조 변기와 배수시설을 확인했다고 26일 밝혔다.

화장실 유구는 초석건물지 안에 변기가 있고, 변기를 통해 나온 오물이 잘 나갈 수 있도록 점차 기울어지게 설계된 암거(暗渠), 즉 지하에 고랑을 파서 물을 빼는 시설까지 갖춘 복합 변기형 석조물이 있는 구조다.

변기형 석조 구조물은 양 다리를 딛고 쪼그려 앉을 수 앉는 판석형 석조물, 그 밑으로 오물이 배출될 수 있도록 타원형 구멍이 뚫린 또 다른 석조물이 조합된 형태다.

변기형 석조물로 내려간 오물이 하부의 암거로 배출된 것으로 보인다.

변기에 물을 흘려 오물을 제거하는 수세식이며 물을 유입하는 설비가 따로 갖춰지지 않았으므로 준비된 항아리에서 물을 떠서 변기 하부로 오물을 씻어 내보내는 방식으로 짐작된다.

고급석재인 화강암을 가공해 만든 변기시설, 오물 제거에 수세식 방식이 사용된 점, 변기 하부와 오물 배수시설 바닥에 타일 기능을 하는 쪼개 만든 벽돌(전돌)을 깔아 마감했다는 사실에서 통일신라 최상위층의 화장실 모습을 유추할 수 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는 경주와 익산 등지에서 고대 화장실 유적이 출토됐으나 화장실 건물과 변기시설, 오물 배수시설이 이렇게 같이 발굴된 사례는 없었다.

이번 동궁과 월지에서 확인된 화장실 유구는 화장실이라는 공간과 그 부속품들이 한자리에서 발견된 최초의 사례로, 현재까지 조사된 통일신라 시대까지의 고대 화장실 중 가장 고급형으로 이해할 수 있다.

나아가 신라 왕실의 화장실 문화의 발달 정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발굴조사에서는 화장실 유적 외에도 동궁과 월지의 출입문으로 추정되는 대형 가구식 기단 건물지가 확인됐다.

▲ 변기시설과 배수시설 연결모습.
▲ 변기시설과 배수시설 연결모습.

가구식 기단은 석재를 목조가구처럼 짜 맞춘 기단을 말한다.

이 건물지는 통일신라시대 왕경 남북도로와 맞닿아 있고, 건물지 규모에 비해 넓은 계단시설이 있어 그간 경주 동궁에서 나오지 않았던 출입문일 가능성이 크다고 연구소는 설명했다.

이외에도 동궁 내 생활과 관련된 창고시설과 물 마시는 우물도 확인했다.

다양한 생활유물 등도 출토돼 신라 왕궁의 일상생활 연구자료로 확보했다.

한편,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2007년 동궁과 월지 북동쪽 인접지역 발굴조사에 들어가 그동안 대형건물지군, 담장, 배수로, 우물 등 동궁 관련 시설을 확인했다. 2007년 이전 출토된 것과 동일한 기와와 벽돌, 토기류도 계속 출토 중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황성호기자 hsh@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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