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환자의 일기 (16)

높고 푸른 하늘을 보며 포항으로 가는 ktx 기차에 올랐다. 비록 수술 후 경과를 보기 위해 진료받으러 가는 길이지만, 아주 오랜만에 느끼는 행복이다.

10년 이상 지속된 골반 통증은 좋아하던 여행도, 주부로서의 역할도 포기하게 했다. 생리 때만 아니라 나의 일상은 줄곧 골반 통증과 요통, 밑이 빠질 것 같은 통증, 하복통과 함께했다.

신통하다고 소문난 골반통 전문가까지 찾아다녔지만 “원인을 알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가슴은 답답한데 누구 하나 이해해주지 않아 무척 서러웠다.

눈물이 났다. 밤낮으로 인터넷을 뒤져 나를 괴롭히는 이 지긋지긋한 통증의 원인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러다 지방의 한 산부인과 의사가 쓴 글을 읽게 됐다. 포항성모병원 의사란다. 그는 자신을 오랜 시간 심부 자궁내막증 진단과 치료법을 연구해왔다고 소개했다.

많은 환자들이 적절한 진단과 치료를 받지 못하고 고통 속에 살고 있어 신문칼럼을 통해 정기적으로 심부 자궁내막증에 관한 글만 게재하고 있다고 했다.

같은 통증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 모여 만든 인터넷 카페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생전 처음 포항이란 도시로 향했다.

10분가량 진료상담 후 초음파 검사를 통해 자궁과 직장 사이 깊은 골반에 위치한 우측 자궁천골 인대의 심부 자궁내막증 진단을 받았다. `이렇게 쉽게 진단할 수 있는 병이었다니!`

이어 골반 중심으로 MRI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이전에 받았던 척추 중심의 MRI는 소용이 없다고 했다. 어리둥절하면서도 비싼 검사비용에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이전에는 단 한 번도 듣지 못했던 병명을 확인한 터라 마음은 쉽게 움직였다. 애초 계획을 바꿔 포항에서 하룻밤 묵으며 금식하고 다음날 MRI검사 후 서울로 돌아왔다. 기대와 의심이 공존하는 복잡한 심정으로 결과를 기다렸다.

이틀 뒤 걸려온 전화. “환자의 병은 우측 자궁천골 인대가 엄지손가락 크기로 커진 심부 자궁내막증입니다. 복강경 수술로 치료가 가능하며 수술 후 통증은 사라질 것입니다.”

가족들과 고민 후 수술을 받기로 했다. `이 지긋지긋한 통증이 사라질 수만 있다면!`

수술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통증은 지속됐고 자꾸만 조바심이 들었다. 병원에 전화를 걸어 “죽고 싶다, 살려달라”는 거친 말로 수술 일정을 당겨보려 했다. 기다리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차례가 됐다. 수술 다음날 아침 회진을 온 선생님은 “이제 안 아프죠?”라고 물었다. 긴 잠에서 막 깨어난 터라 “뭐가 안 아프냐는 거지?”싶어 잠시 생각에 잠겼다. 통증 자체를 잊고 있었던 것이다.

퇴원 후 일주일이 지나 포항으로 가는 길. 비록 진료 때문이지만 `여행`을 가는 기분이다. 극심한 통증에 시달릴 땐 기차에 편히 앉아 어디 간다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느긋한 마음으로 창가 풍경을 여유롭게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마냥 신기할 뿐.

이제 내가 할 일은 오직 하나. 주변에 알리는 것이다. 그 누구보다도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도 고통받고 있는 심부 자궁내막증 환자들과 여행의 기쁨을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