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는 이탈리아의 크리스토포리라는 사람이 처음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피렌체를 대표하는 가문 `메디치`를 위해 건반악기를 제작한 그는 1710년경에 3대의 피아노를 완성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유럽의 부유한 귀족들은 그들의 문화생활 향유를 위해 피아노를 발명했고 그 피아노는 세월이 흘러 대중화의 길을 걷게 됐다.

피아노는 서양을 대표하는 악기다. 서양음악의 꽃이란 별명도 있다. 피아노가 서양음악의 꽃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피아노만이 가지는 특징적 소리의 강약 조절 때문이다. 그래서 피아노는 독주로도 연주되고 다른 악기 연주의 반주로도 많이 애용되고 있다.

대구에 피아노가 처음 들어온 것은 1900년 3월 26일이다. 대구 최초이면서 우리나라 최초이기도 하다. 피아노가 한국 땅에 처음 발을 디디게 된 곳은 달성군 사문진 나루터다. 선교사인 리차드 사이드보텀 부부가 선교를 목적으로 도입한 피아노는 샌프란시스코를 출발해 일본과 부산을 거쳐 낙동강 하류인 사문진으로 옮겨진다. 당시 사문진 나루터는 영남권 물류 요충지며 대구로 통하는 관문 역할을 했던 곳이다. 경부선 철로가 없었던 시절로서는 열악한 육로교통보다는 짐배를 통한 수로가 수월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주민들 사이에는 이런 피아노는 `귀신통`으로 통했다. 벌써 100여 년 전 일이다.

대구에 처음 들어온 서양음악은 찬송가나 손풍금 등 선교활동으로 주민들과 만났다. 박태준, 현제명 등 대구출신 음악가들이 일제 강점기에도 그나마 음악적 재능을 발휘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종교적 이유가 있었다. `달성 피아노 100대 콘서트`가 이런 역사적 배경을 안고 문화 콘텐츠로 변신한 게 올해로 6년째다. 100여 년 전 우리나라 최초로 대구 사문진에 들어온 피아노는 시간과 역사의 옷으로 갈아입고 `100대 피아노`로 부활했다. `100대 피아노`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선정, 지역대표 예술 공연으로 우뚝 섰다. 작년에는 이탈리아 `PIANO CITY MILANO 축제`와 교류를 시작하면서 세계무대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피아노의 화려한 부활이다.

/우정구(객원논설위원)

    우정구(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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