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김종철
일요일이다. 봄의 손짓은 마음을 자꾸만 설레게 한다. 바다를 지나 산도 보고, 계곡에서 물소리와 나란히 앉아 오묘한 봄과 함께 있고 싶다. 어디로 갈까? 가까운 사찰이 좋겠지? 차량이 줄지어 선 도로를 벗어나 번뇌보다 더 꼬불꼬불 엉킨 길을 따라가니 벚꽃이 반기는 어느 사찰이 나온다. 입구에서 입장료를 내라 한다. 꽤 비싸다. 입장료 2,500원, 주차료 2,000원. 전국 사찰이 단합한 모양이다, 어느 사찰에 가도 비슷한 가격인걸 보면. 큰 시설도 없고 볼거리도 없는 거 같은데, 입장료 내기가 아깝다. 게다가 차는 아예 입구에서 주차를 해야한다. 모두 걸어서 올라가야만 한다. 대웅전까지 걸으면서 왜 이렇게 비싼 돈을 사찰에서 받을까 생각해 본다. 몇 해 전에 아내랑 둘이서 왔다가 입장료 비싸다고, 산을 돌아서 기슭을 헤맨 끝에 겨우 사찰로 가는 길을 찾은 적이 있었다. 둘이서 마치 영화 찍듯이. 고생한 끝에 입장료는 아꼈다. 그런데 대웅전에 들어서도 흥이 나질 않고, 감로수를 마셔도 시원하질 않았다. 산불조심 완장차고 다니는 사람만 보면, 혹시 나 잡으러 온 사람처럼 보이고. 뒤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편하질 못했다. 아내를 설득하여 “온 김에 생두부라도 먹고 가자”하면서 죄지은 마음을 달랬다. 오늘은 그때의 추억으로 잠시 웃었다. 세상에 공짜로 주는 건 가치가 없어 보인다. 금액만큼 가치를 인정받는다. 고급 레스토랑은 차 값이 비싸다. 그래도 연인들은 몰려간다. 그만한 가치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내장식이며 음악이 독특한 분위기를 주니, 뭔가 다른 점이 있는 것이다. 마침, 숲 사이를 저공 비행하는 바람소리에 정신을 차리니, 봄나들이에 길 헤매는 졸졸 물소리가 계곡 건너편에서 속살거린다.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4,500원 짜리 맑은 공기-천연산소를 마시는 값! 주차장에서 대웅전까지 걸어가란 뜻은 그냥 차 타고 올라가면 폐부 깊숙이 맑은 공기를 넣지 못하니 비싼 값을 낸 만큼 숨을 헐떡거리며 걸어야 비로써 맑은 공기를 듬뿍 마실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라고. 볼거리가 없음은 인공적으로 가꾸지 않고 계곡과 숲과 개울물, 자연 그대로를 즐길 수 있도록 함이며, 중생으로 살아가는 속세의 고통을 자연에 맡기고 잠시 쉬어가란 뜻이 아니던가! 공기만 해도 그렇다. 도시에서 공짜로 마시는 공기는 맛이 없다. 도심의 공기와 숲을 걸으면서 마시는 공기는 질이 다르다. 그러니 입장료가 어찌 아까울까? 오히려 그만한 대가를 지불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니냐. 앞으로는 사찰뿐 만 아니라 입장할 가치가 있는 장소에 갈 땐 아깝게 생각지 말고 반드시 입장료를 내고, 또 그만한 가치를 누려야겠다. 세속에 찌든 고리타분한 생각들은 모두 숲 사이 흐르는 바람에게 맡기고, 푸른 그늘 아래로 홀가분하게 미소지으며 걸었다. 세상 모든 걱정일랑 흐르는 냇물에 씻어 조약돌탑 쌓아 올리고, 번민과 욕심일랑 다람쥐에게 던지고, 마음껏 환하게 웃어 보았다. 봄과 함께 노닐었다. 탑을 돌아가는 산새들 따라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문득 아내의 옷에서 봄이 후두둑 떨어진다. 푸르름에 튀긴 자연산 공기와 그보다 더 맑은 아내의 무공해 미소가 담긴 감로수에 떨어진 봄을 담아 마셨다. 오늘은 입장료보다 더 많은 것을 얻었다.

<수필가 김종철 약력>

1955년 성주생

1996년 ‘문예한국’ 여름호

시집 ‘선생님도 혼자 있을 땐 운다’

현재 포항제철중학교 교사

    윤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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