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의호<br /><br />포스텍 교수·산업경영공학과
▲ 서의호 포스텍 교수·산업경영공학과

낯설은 포항에 온 지도 28년이 지났다.

오클라호마 주립대 교수로 있던 시절인 30년 전인 1987년, 갑작스런 포스텍 교수의 한 통의 전화로 포항에 대학이 생겼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다음 해 인천에서 있었던 재미과학기술자 학술대회 참가차 왔을 때 포스텍 학교 버스를 타고 포항에 처음 와 보았고 한참 건물이 지어지고 있는 포스텍을 보았다.

당시 교수들 중 지인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포스텍의 발전과 전망에 대한 자신만만한 태도에 압도되었고 2년후 1989년 포스텍에 오게 되었다.

지난주 포스텍을 퇴임하는 퇴임식을 다른 6명의 교수와 함께 가진 필자의 눈가엔 감회의 눈물이 고이는 것을 느꼈다. 고별강연을 할 때는 가슴에 북받치는 감정을 억제하기 힘들었다. 이별과 고별의 감정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포스텍은 어떤 대학인가?

문득 3년 전 유엔 안보리에서 행한 한국의 오준 유엔대사가 행한 연설을 새삼 생각게 한다. 그는 “한국인들에게 북한사람들은 그냥 스쳐가는 아무나(anybodies)가 아니다”라고 외쳤다. 그는 또한 “먼 훗날 우리가 북한을 위해 한 일을 돌아볼 때 우리가 올바른 일을 했다(did the right thing)라고 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랄 뿐”이라고 외쳤다.

이 두 마디가 정말 포스텍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라고 느껴진다. 30년 전 아무것도 없었던 황량한 땅에 포스텍을 세울 때 외국에서 귀국한 교수들과 그리고 직원들에게는 또한 위험을 안고 포스텍을 선택하였던 졸업생들에게는 포스텍은 `아무나의 대학`(anybodies` university)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 최초의 연구중심대학`을 건설하기 위해 우리가 피땀흘려 한 일이 먼훗날 우리가 “필요한 올바른 일을 하였다”라는 평가를 받기를 바랄 뿐이다. 어려서부터 방송이나 언론에 흥미를 가졌던 필자는 포스텍에 입성하면서 항상 포스텍의 우수한 연구력, 우수한 교수인력과 학생들이 세계적으로 알려지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았다.

수퍼텍(SuperTech)이라는 자발적 교수 그룹의 홍보팀으로 전국 고교를 돌았고, 또 이중언어 대학(Bi-lingual Campus) 선언과 같은 국제화, 그리고 포스텍의 국제적 평가와 위상을 위해 나름 지난 28년간 열심히 교수, 스태프들과 함께 뛰었다.

여러 교수님들과 스태프들의 도움으로 이러한 일들은 비교적 순조로웠고, 포스텍은 타임즈(THE)에 의한 세계랭킹 28위(한국 1위)라는 국내 대학 최고의 평가도 받았다. 이 모든 결과들은 모두 포스텍 구성원들과 그리고 포스텍을 후원한 포스코, 그리고 지역사회의 성원, 정부의 지원 등의 결과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포스텍은 다양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라이벌이었던 카이스트의 도약과 디지스트, 유니스트, 지스트 등의 등장, 그리고 예상되는 한전공대 등의 새로운 진입대학들, 홍콩, 싱가포르 대학들의 추월과 약진 등 국내외로 거센 도전과 추월을 받고 있다.

대학의 사명은 좋은 학생을 선발하여 “좋은 교육과 연구를 통해 좋은 졸업생을 배출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명 달성을 위해서는 포스텍의 국내외적 위치는 확고히 정립되어야 한다.

이별은 마음의 이별이고 고별은 몸의 이별이라고 한다. 필자가 나름 정의를 내려본 것이다. 포항과 포스텍에 대한 마음은 고별일 수는 있지만 이별은 결코 아니다.

필자의 젊음을 모두 보낸 이 도시, 이 대학에서의 이별은 없을 것 같다.

유명한 맥아더의 연설 일부를 인용해 본다.

“Old professors never die nor fade away. They are with us forever.(노교수는 죽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