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의호<br /><br />포스텍 교수·산업경영공학과
▲ 서의호 포스텍 교수·산업경영공학과

맹장염, 골프, 노벨상.

관련이 전혀 없어 보이는 이 세 개의 단어가 지난주 내내 머릿속에서 의문으로 다가왔다.

몇일 전 새벽, 미국에서 공부하는 막내의 전화를 받았다. 얼마전부터 배가 아프다고 하던 아이가 끝내 병원 응급실에 입원했다는 전화였다.

한국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꽤 흔한 맹장염이었다. 맹장염은 흔히 부르는 통칭이고 원래 충수염이라고 한다고 한다. 맹장 끝에 달린 충수돌기에 염증이 발생하는 것을 말하는데, 충수염은 수술에 의한 합병증보다 방치되었을 때의 후유증이 훨씬 심각하므로 충수염이 의심될 때는 수술적 처치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하루 이틀이 지나도 수술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현지 친지들 말에 의하면 맹장이 안에서 터진 것 같은데 수술은 안 하고 항생제와 진통제만 투여하고 있다고 한다. 온갖 사전을 뒤져보고 친구 의사들에게 물어보아도 맹장염은 즉각 수술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만 돌아올 뿐이었다.

급기야 미국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큰애가 비행기를 타고 달려갔다. 그리고 보내온 이야기는 맹장이 터지긴 했는데 구멍만 생긴 경우라고 한다.

비유가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순대에 조그마한 구멍이 생겼지만 안에 있는 내용물은 그대로 있는 경우라고 한다. 즉 터지지는 않았기에 항생제 투여로 염증을 치료할 수 있는지 가능성을 보고 있다고 했다. 수술은 안할 수 있으면 안한다는 원칙이 있다고 한다. 하도 답답해 이리저리 알아본 결과, 예외적으로 염증이 고름을 만들었을 경우 바로 수술을 하지 않고 우선 외부에서 배액관(튜브)을 삽입해 고름을 배출하고, 항생제를 투여해 염증을 가라앉힌 후 충수돌기 절제수술을 하는 경우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조금은 안심하려고 노력했다.

응급을 요하지 않는 맹장염으로 결국 이런 애를 태우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여전히 미국 의술의 현장 집행 방법에 대해 의문점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던 중 TV에서는 한국 여자 골프 선수의 영국오픈 우승 소식을 크게 전하고 있었다. 메이저대회의 쾌거라고 한다. 얼마전 다른 메이저 대회인 유에스오픈도 한국의 젊은 여자선수가 우승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또 우승의 쾌거가 들어왔다.

언론은 금년 LPGA(미국 여자 프로 대회) 20개 대회 중 12개에서 한국선수가 우승했다는 믿기 힘든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세계 100개 넘는 나라가 골프를 하고 있지만 한국이라는 한 개의 나라가 이렇게 우승을 휩쓸다니….

친한 친구 의사는 의기양양하게 말하고 있었다.

“한국 사람들은 손재주가 좋아서 이렇게 골프도 잘하고 그리고 병원에서 수술도 잘하는거야. 자네 아들 맹장염 수술은 한국같으면 벌써 간단히 하고 퇴원했을텐데…. 수술은 역시 한국이 최고야”

울화와 초조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오르지만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는 필자에게 한 가지 진한 의문이 다가 왔다.

골프도 잘하고 수술도 잘하는 손재주 좋고 머리좋고 재능있는 한국사람들이 왜 노벨상은 단 한 개도 타지 못할까?

미국이 300개 이상 타내고 유럽 각국이 비슷한 숫자로 받은 노벨상, 정확히 말하면 노벨 과학상을 왜 우리 한국은 단 한 개도 못받는 것일까?

엉뚱하게도 필자는 맹장염 수술을 미루면서 원칙에 충실하려는 미국의학이 답답하긴 해도 노벨상 수백개를 타낸 밑바탕을 형성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실 그 서양인들이 만든 약물과 발명한 수술방식 없이는 손재주는 좋다고 하지만 한국인들의 수술방식은 존재할 수 없다는 아이러니를 생각할 때 무엇이 더 중요할까? 쉽지 않은 대답이다.